충북 청주에 도착해 부근의 시내버스정류소에서 단재사당 가는 차편을 찾아보지만, 표지판 어디에도 행선지는 보이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죽은 큰 고라니가 누워 있는 어느 교차로에서 작은 길로 방향을 바꾸어 가다 보니 사당 경내로 들어선다. 오른쪽 가까이로 기념관이, 그 뒤로 사당과 묘소가, 왼쪽으로 멀리 동상이 보인다. 입구의 비에 새겨진 ‘천고문’에서는 단재선생다운 결기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동상에서는 학자로서의 자세가 느껴진다. 사당과 묘소를 참배하고 물러나오며 신산했던 선생의 삶을 되짚어본다.

단재의 일생은 독립운동가와 역사학자로서의 삶으로 요약될 수 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은 19세 때에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비밀결사 신민회 조직에 참가하고, 평정관과 의정원 의원으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며, 비타협적 민족통일전선인 신간회 발기인이 되는 등, 독립투쟁의 굵직한 국면을 비켜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무관학교 설립, 한중항일공동전선 결성 등 독립운동의 실천이 여의치 않고, 독립운동 단체들이 분열과 권력 투쟁의 조짐을 보이자, 단재는 보다 적극적인 항쟁을 위한 방편으로 무정부주의를 선택한다.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해 조선에 독립운동 선전기관을 설립하고, 일본인 건축물을 파괴하기 위한 폭탄 제조소 설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중국인으로 변장해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57세로 순국함으로써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단재다운 면모는 역사가로서의 삶에 있음을 내세우는 이도 적지 않다. 변영로와 문일평은 단재는 어디까지나 사가(史家)이며, 사안(史眼)이 남달라 어두운 우리 역사의 ‘해부광(解剖光)’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단재의 특별함으로 언급되는 ‘사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상해에서 단재를 만난 이광수는 상해의 책방을 돌며 조선의 사료를 수집하는 단재의 모습을, 돈이 없어 책을 사지는 못하고, 주인의 핀잔을 들으며 서서 보거나 베끼는 모습을, 반복되는 ‘책사돌이’의 장면을 증언한다. 이렇게 책사돌이를 하며 자료 수집에 나섰던 그는 말한다. “조선사의 황무지를 개척하자면 도저히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겠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양문헌에 대한 큰 도서관이 없으면 조선사를 연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고려의 김부식이 우리의 ‘고기’들을 없애고 중국 측 사료를 인용하며 ‘삼국사기’를 저술한 것이나, 일본이 대가야를 없애고 임나부를 세웠다고 역사에 없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나, 중국이 치부를 감추기 위해 위서(僞書)나 위작을 서슴지 않는 것 등의 사례만 감안하더라도, 사안을 갖추기 위한 일차적 작업이 충분한 사료를 확보하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를 침범한 당태종이 고구려군의 화살을 맞은 사실은 ‘신·구당서’나 ‘삼국사기’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그래서 관련된 ‘전설’과 이색의 ‘목은집’, 진정의 ‘양산묵담’을 참고하고, 공구의 ‘춘추’에서 비롯된 역사기술의 악습을 감안하고, ‘통감’과 ‘강목’을 참조하면, 당시 상황이 퍼즐 맞춰지듯 드러난다고 한다.

“당태종이 보장왕 4년에 안시성에서 눈을 다치고 도망하여 돌아가서, 당시의 외과 치료가 완전하지 못하므로 거의 30개월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보장왕 5년에 죽었다”는 이 수십 자에 불과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 5, 6종류의 서적 수천 권을 반복하여 읽어내야 한다.

이런 외적 자료의 확보가 사안의 필요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역사철학적 명제를 도출한 통찰력으로도 충분치 않다. 그것에는 독립투쟁 못지않은 열정이 보태져야 한다. 니체는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현재의 에너지다”라고 했고, 벤야민은 “과거가 생긴 것은 현재보다 먼저지만 과거의 잠재적 의미가 실현되는 것은 현재가 생긴 후다”라고 말한다. 결국 역사는 미래로 열린 현재와 과거의 투쟁의 기록인 셈이다.

단재가 발해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삼국사기’의 김부식에 분개하고, ‘묘청의 난’을 조선사에서 대사건으로 다루며 민족적 자주성을 평가하는 것도 그것의 현재적 의미에서일 것이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도, 비정치적인 독자적 기록도 아니다. 역사는 어차피 역사에 대한 비정(批正)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단재는 뛰어난 역사학자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을 들먹이고, 일본의 학자가 임나일본부설을, 관료가 독도에 관한 망언을 일삼고, 중국이 고구려를 동북공정이란 미명으로 자국 역사의 변두리에 편입시키려는 상황에서 단재의 현재적 의의는 결코 희석될 수 없는 것이다.

도보여행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