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대 뉴스메이커는 판사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데다, 법관대표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판사 탄핵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사법 개혁을 바라는 판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사는 안동 판사다. “(사법 농단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의) ‘재판 독립’ 침해행위가 유죄인지와 무관하게 위헌적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한다”며 탄핵 논의의 불을 지핀 까닭이다.

민속학자 임재해 안동대 교수가 최근 ‘유림보다 나은 안동 판사님들!’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눈길을 끈다. 임 교수는 이 글에서 “안동은 유림의 고장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유림다운 실천을 하는 일에는 매우 인색하다. 박근혜 정부 말기 성주 유림은 ‘사드 배치 반대 상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영주 청년유림은 ‘격박근혜대통령하야’라는 칠언고시로 시국선언을 했는데 안동 유림은 끝내 잠자코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안동지원 판사 6명은 사법사상 최초로 사법 농단에 대한 시국선언 성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안동 토박이 유림보다 객지에서 온 법관들이 더 유림다운 지조와 결기를 보였다”고 상찬했다.

그의 글에는 공감을 표시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중에서 ‘진짜배기 유림은 일제 때 북간도로 식솔을 이끌고 가버렸다’는 댓글이 특히 인상적이다. 안동 출신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1858~1932) 일가를 지칭하는 듯해서다. 그는 항일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1911년 서간도로 망명해 이회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서로군정서 대한통군부 등 항일단체를 조직하는가 하면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내기도 했다. 3000석 재산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그의 집안은 직계와 방계를 포함해 모두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집안”이라고 했다.

안동 유림 하면 흔히 이황 같은 대유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행합일이 지식인의 최고 덕목임을 생각하면 선비다운 기개를 보여준 석주가 있어 안동 유림의 명맥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안동 토박이 임 교수의 지적은 안동 유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지식인에게 해당된다. 공자 말씀처럼 나라에 도의가 없는데도 일신의 부귀만 추구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