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상징이 됐던 때가 있었다. 군사 독재 시절 물리적인 폭압에 대항해 무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1980년대가 가장 심했다. 당시 대학가는 경찰의 최루탄과 학생들의 화염병이 맞서는 악순환이 일상과 같았다. 집회와 시위 현장의 화염병은 정통성 없는 공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와 자유를 지키는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급속히 줄어들어 이제 보기 드물어졌다.

화염병에 담긴 저항적인 인식은 우리나라 전유물만은 아니다. 핀란드군은 1939년 겨울 2차 대전 때 침공한 소련군의 전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싸웠다. 화염병은 진격하는 소련군 전차들을 불길 속으로 몰아넣었다. 화염병 효과로 120만 대군의 소련은 불과 16만 병력의 핀란드에 고전했다. 핀란드군은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인 바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에 빗대 이름 붙인 것이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은 화염병을 만들어 독일군에게 던지면서 저항하기도 했다.

원래 화염병은 대전차 무기였다. 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차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전쟁 무기로서 화염병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나 폭동 등에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만들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염병은 유리병에 휘발유나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을 채워 만든다. 심지에 불을 붙여 던지면 병이 깨지고 시너 등이 흘러나와 불이 퍼지므로 사람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1989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사용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한다.

최근 초유의 대법원장 ‘화염병 테러’가 일어났다. 70대 농민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출근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져 뒷타이어 일부가 불에 탔다. 농민은 소송에서 패소하자 법원에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번 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대법원장 개인을 넘어 사법체계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법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저를 흔드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 일탈로 치부하기에 앞서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나오는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을 사법부는 새겨봐야 한다. 국민 신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