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선배들로부터 ‘남자가 중년이 되면 3T를 좋아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커피보다는 차(Tea)를 찾고, 술자리보다는 일찍 귀가해 텔레비전(TV)을 보게 되며, 운동 하나 정도는 해야 건강관리가 될 것 같아 접하기 쉬운 테니스(Tennis)를 때때로 즐긴다는 뜻이다.
사실 그때는 이 말이 와닿지 않았으나 막상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주로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고, 아이들도 출가해 마땅히 상대할 사람이 없으니 한 손으로는 향 좋은 찻잔을, 다른 손으로는 TV 리모컨을 쥐는 게 제법 익숙해져 3T는 아니더라도 2T 정도는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T 중 하나인 TV 시청. 터무니없는 가족 관계를 설정해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는 요즘 드라마에는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어 아내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수년 전 방영됐다 재방영되는 역사드라마를 즐기게 됐는데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고교 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형벌제도가 머리를 스쳐간다. ‘태-장-도-유-사’의 순서대로 외운 조선 시대의 형벌제도는 주로 신체형 위주였다.
그중 가는 형장(刑杖)으로 엉덩이를 50대 이하 때리는 태형(笞刑)과 굵은 형장으로 엉덩이를 100대까지 때리는 장형(杖刑)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전근대적인 형벌제도여서 지금은 사라진 제도가 되었음도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한 죄인에게 낮은 형량의 판결이 나는 것을 보면서 형벌제도에 대한 불신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묻지마’식 폭행, 부녀자 또는 아동 성폭행 같은 파렴치범들에게 음주 또는 정신질환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이 적용되는 것에 대해 거의 모든 국민이 분개하고 있다. 때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물론 심신미약 감형은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사법부의 항변이 있지만 꼭 심신미약 감형이 아니더라도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이 너무 많다. 2008년 당시 8세였던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은 단지 징역 12년 형을 받았다. 저항 능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여자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중죄인에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적용해 3년이나 감형했다. 15년 형도 터무니없이 가볍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수개월 전 김해공항에서 과속으로 달리다 택시기사에게 중상을 입힌 운전자에게 최근 법원이 금고 2년을 선고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판결이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했다는 흔적은 없으나 피해자는 아직도 중태에 빠져있는데 가해자가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큰 금액으로 합의를 했다는 이유다.
휴가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50여 일간 사투를 벌이다가 고 윤창호 씨가 숨졌다. 이 사건은 범인이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결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대법원 양형 기준을 감안하면 중형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3년 전후의 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말이다.
이거 말고도 납득되지 않는 판결은 차고도 넘친다. 법원은 양형 기준을 토대로 범죄 당시의 정황과 그 이후 죄인이 보이는 태도 등을 감안해 형량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초범이다’ ‘관련 전과가 없다’ ‘피해자와 합의했다’ ‘음주 또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이었다’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 등이 고려된다고 하니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안위를 더욱 걱정하는 법원의 판단이 기가 찰 노릇이다.
형량을 결정할 때는 오직 잘못한 행위 그 자체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놓고도 돈으로 합의하고 잠깐 동안 표정관리만 잘하면 낮은 형량에 심지어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정말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항 능력이 없는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 음주운전으로 인한 범죄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받으면 안 되는 범죄다.
함무라비법전 속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몇 년 후 출소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파렴치범들에게는 징역형과 함께 태형이나 장형을 부활하여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게 하자고 주장하면 필자가 심한 억지를 부리는 걸까.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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