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인 2007년에는 웬만한 병원 신생아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를 맞아 출산 붐이 인 덕분이었다. 그해 부산에는 2만8223명의 아기가 태어나 합계출산율이 0.91명에서 1.02명으로 반등했다. 바로 전해가 입춘이 두 번 들어 결혼에 좋다던 쌍춘년이라 “신혼부부가 결혼하자마자 아이 갖기를 서둘렀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황금돼지띠 아기들이 돌이 되던 해 금값이 돈당 7만~8만 원에서 14만 원으로 오르는 바람에 많은 돌배기가 금수저 대신 은수저를 물어야 했다. 이들의 유치원 입학이 시작된 2012년에는 유치원 대란이 일었고, 2014년학년도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몇 년 새 최대를 기록했다. 사실 2007년은 정해년(丁亥年)으로 ‘정(丁)’자가 ‘화(火)’를 의미하기 때문에 ‘황금’이 아니라 ‘붉은돼지해’였다는 해석은 한참 뒤에야 나왔다.

10간(干)과 12지(支)를 하나씩 조합해 만드는 간지는 60년을 주기로 한 번씩 돌아오지만 유난히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해가 있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도 흰색을 뜻하는 ‘경(庚)’이 들었다며 신령스러운 백호랑이해라 했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은 용띠해인데 ‘흑룡’의 상서로운 기운을 타고 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때마다 베이비 붐이 생겨났다. 무술년(戊戌年)인 올해 역시 그냥 개띠가 아니라 황금개띠해라 불렸다. 출산 관련 업계나 웨딩업체의 마케팅이라고도 하지만 ‘올해는 달랐으면’ 하는 강한 기원이 이런 현상을 빚어내는 것이리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 2019년 황금돼지해 맞이 소망탑이 설치됐다. 내년은 기해년(己亥年)이다. ‘기(己)’가 노란색 혹은 황금색에 해당해 이번엔 진짜 황금돼지해라고 벌써부터 들썩인다. 복스러운 소망탑 돼지목에 행운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주렁주렁 달릴 일만 남았다. 황금돼지해가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다. 올해 연간 신생아 수는 이미 역대 최저를 예고하고 있다. 임산부들이 임신과 출산 진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국민행복카드 신청 건수가 대폭 떨어져 이번 돼지해는 지난번과 같은 출산율 반등이 없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있다. 저출산이 국가 재앙 수준이다. 내년에 태어나는 아기는 한 명 한 명이 나라 전체의 복덩어리 황금돼지임이 분명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