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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철거민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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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9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현 성남)는 짧은 희망과 긴 절망이 교차한 모순의 땅이었다. 서울시는 시내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하면서 해당 주민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초 한 가구에 20평씩 평당 2000원에 분양하고 그 대금을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토록 했다. 그러나 투기자본의 개입으로 토지 투기 붐이 일자, 전매입주자들에게 평당 8000~1만6000원에 이르는 땅값을 일시불로 내게 한 데 이어 취득세·재산세·영업세·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부과했다. 분노한 이주민들은 대대적인 저항에 나섰다. 해방 이후 최초의 도시빈민투쟁이었던 ‘광주대단지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다치고, 주민 23명이 구속됐다.

   
작가 윤흥길은 1977년 이 사건을 소재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란 제목의 중편소설을 썼다. 소설의 주인공은 집을 장만하려고 철거민 입주권을 구해 광주대단지 땅을 분양받는다. 임신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임시로 단칸방에 세든 그는 집을 짓지는 못한 채 우연히 시위대열에 끼었다가 주동자로 몰려 감옥살이를 한다. 생활비는 떨어지고, 아내는 출산 도중 중태에 빠진다. 집주인에게 수술비를 빌리려다 거절당한 그는 칼을 들고 집주인의 방에 침입한다.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진 그의 셋방에선 아홉 켤레의 구두가 발견된다. 구두는 주변부로 쫓겨난 도시빈민의 마지막 자존심을 상징한다.

소설이 발표된 때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지난 4일 한강에 투신한 서울 마포구 아현2재건축구역의 철거민 박모(37) 씨는 구두는커녕 가방 하나와 유서 한 장 달랑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다. 3일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유서에는 칼바람이 쌩쌩 분다. 그는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도 했다.
5명의 철거민이 숨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 가지만, 자본의 위력과 철거민의 대책 없는 내몰림은 여전하다. 아현2구역에선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24차례의 강제철거가 이뤄졌다. 주택은 계속 공급되고 있지만 아직 전국 가구의 44.1%가 무주택자다. 제2, 제3의 박 씨가 즐비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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