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단순하지만 동서양 전쟁사에 혁명을 일으킨 발명품으로 자주 손꼽히는 물건이 ‘등자’이다. 말을 탈 때 발을 받치는 발걸이를 말한다. 등자의 등장 이전 전쟁의 승패는 보병이 좌우했다. 기병은 말 위에서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발을 등자에 고정시켜 말과의 일체화가 가능해지자 기병은 곧 보병을 압도한다. 등자의 위력은 중국보다 몽골에서 발휘됐다. 원래 명사수였던 이들은 등자 덕분에 달리는 말 위에서도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게 됐고 그렇게 중국은 물론 중동까지 정복해 나갔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떨게 한 조선의 병기가 ‘애기살’이라고도 불리는 ‘편전(片箭)’이다. 길쭉한 통인 통아에 화살을 넣어 발사하는데 살의 길이는 짧으나 사정거리는 최대 600m에 달했다. 50m 정도에 불과한 일본의 조총과도 비교가 안 됐다. 편전을 발사하는 통아가 매우 오묘한 각도로 제작돼 발사된 살의 속도가 빠르고 관통력은 강하지만 소음이 적어 야간 전투 때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세계의 패권은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기술을 발전시킨 나라는 다음 세기 역사를 이끌었다. 21세기형 기술패권 다툼이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은 이달 초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의 부회장이자 창업자 장녀인 멍완저우(孟晩舟)를 미국이 캐나다에서 체포하면서 표면화됐다. 화웨이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라는 건 내세운 이유이고 군사기술과 직결되는 무선통신기술 분야에서의 강대국 간 주도권 다툼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은 흔히 ‘중화민족의 부활’쯤으로 알려졌지만 21세기 미중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현실 인식을 깔고 있다. 이 말을 만들어내고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류밍푸(劉明福) 전 중국 국방대학 교수는 저서 ‘중국몽’에서 ‘중국이 21세기 세계 넘버원이 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며 미국과의 넘버원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세계 전쟁사를 바꿔놓은 화약을 발명한 나라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화약을 그저 귀신 쫓는 폭죽놀이에 썼고 이것을 공짜로 얻은 유럽은 총과 대포를 만들어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쟁투는 이미 펼쳐졌고 그 전투의 일단이 이번 화웨이 사태인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