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우연히 들른 샌프란시스코시청 앞에서 넓게 펼쳐진 광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유가 있었다. 부산시청 광장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졌기 때문이다. 매년 100여 건의 집회가 열리는 부산시청 광장은 대형 화분과 화단, 볼라드로 가득 차 광장이라고 표현하기 민망했다. 광장은 누구나 목소리를 내는 열린 사회를 뜻한다. 누군가는 광장의 넓이가 민주주의와 비례한다고 표현했다. 그런 면에서 당시 부산시청 광장은 폐쇄된 사회와 불통을 상징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세상이 달라졌다. 민선 7기가 출범하면서 부산시청 주변의 화분과 화단을 철거했다. 닫힌 광장을 열어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의미였다. 부산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시민과 소통하는 부산시장’이란 문구가 금방 눈에 띈다. 드디어 부산도 열린 사회가 되는 듯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11일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예술회관. 오거돈 시장이 부산예총 회원 50여 명과 만났다. 명목은 문화예술인 간담회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화난 문화예술인들을 달래는 자리였다. 문화예술인들은 상당히 격분한 상태였다. 부산시가 내년도 문화기관과 행사의 예산을 삭감했고 공사 중지 5개월 만에 오페라하우스 공사 재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문화예술계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관해 찬반이 맞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 시장과 문화예술인들이 마주 보고 앉았다. 날 선 긴장 속에서 서슬 퍼런 질문과 답변이 오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부산시가 간담회를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다.
오 시장 인사말 이후 취재진은 간담회장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 뒤 시는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자료를 배포했다. 아마도 이날 비공개 간담회는 열린 사회를 자부하는 민선 7기 오거돈 시정의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단순히 비공개 간담회 현장만 놓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선 7기 출범 후 적어도 문화 분야에서 일관되게 이어진 흐름이 그렇다는 뜻이다.
한번 따져보자. 우선 시는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하면서 출연금 유보라고 표현했다. 어디 그뿐인가. 오페라하우스 공사를 중지한 5개월 동안 시는 시민 의견을 듣는 자리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문화예술 단체가 나서 두 차례 시민대토론회를 열었다. 공사 재개 결정 과정도 뒷말이 많았다. 지난달 25일 공사 재개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담당 부서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 담당 부서의 고위 간부는 “나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담당 부서 간부가 모른다면 도대체 누가 알고, 누가 결정했다는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시 내부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비공개 간담회는 한마디로 하이라이트다. 시의 고위 간부에게 왜 비공개로 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편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다.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담스럽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취임과 동시에 열린 사회를 만들겠다고 시청 주변의 화단부터 걷어낸 민선 7기 오거돈 시정이 ‘편하게 소통하기 위해’ 간담회를 비공개로 했다는 말인가.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이 있었다는 뜻인가. 그동안 많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카메라 앞에서 브리핑했던 오 시장의 모습을 놓고 판단하면 간담회 비공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간담회에서 쓴소리가 나오면 듣는 것도, 세상에 공개하는 것도 오 시장과 부산시의 역할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열린 사회는 더더욱 아니다.
앞선 민선 6기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인 지난해 9월 ‘뉴스와 현장’을 통해 ‘부산은 21세기에 진입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소설가 최인훈이 1994년 발간한 소설 ‘화두 1’의 내용을 언급했다. 최인훈은 인류를 공룡에 비유하며 “머리는 20세기 마지막 부분에서 21세기를 넘보는데 꼬리 쪽은 아직도 19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표현했다. 당시 부산시가 중·동·서·영도구 원도심 통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을 빗대 한 말이었다.
이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부산은 21세기에 진입했는가. 아니다. 아직도 20세기를 헤매고 있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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