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구분’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얼핏 옥(玉)과 석(石)을 가린다, 곧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린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정반대의 뜻이다. 옥석구분(玉石俱焚)이라는 말은 서경(書經)에 ‘火焰昆岡玉石俱焚’ 곧 ‘곤산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함께 불타 없어진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 모두 구별되지 않고 함께 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 ‘구분’이라는 말이 ‘구분(區分-가리다)’의 음과 같으니 대부분 그렇게 여기거나 사용하고 있다. 분명 원래 의미에서 잘못, 아니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고쳐지지 않고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은 아마 아이러니(반어법)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 오히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불에 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의미가 더해진 것이니 본래의 뜻보다 훨씬 강화(强化)되었다.
‘삼마이’는 보통 질 낮은 삼류라는 뜻을 지닌다. 일반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예술 쪽에서는 간혹 사용한다. 일본의 ‘가부키’에서 유래된 말로 극을 시작하기 전에 연기자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소개하는데 첫 번째 두 번째 장[매(枚)]에는 주연이나 중요 배우의 이름이 나오지만 세 번째 장에는 조연급의 시시한 배우 이름이 나온다. 그래서 발음도 상당히 거칠게 ‘쌈마이’라고 하면서 수준이 낮은 예술가를 지칭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삼마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삼류’라는 말과 같은 뜻이지만 뉘앙스 차이가 있다. ‘삼류’보다는 ‘삼마이’라 했을 때 비아냥거림이 묻어 있다.
말은 쓰다보면 좀 더 강화된 뜻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없던 말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외래어를 끄집어 와 쓰기도 하고 기존에 쓰던 말을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옥석구분’과 ‘삼마이’는 각각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유용하게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이라는 것은 늘 ‘질(수준)’의 문제가 뒤따른다. 그것을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예술활동이란 차이를 더욱 벌리려는 측과 그 차이를 따라가려는 측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니 그 차이가 예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예술은 그만큼 발전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단체이거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이 그 차이를 모르거나 무시한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 사업들이 옥석구분(玉石區分)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옥석구분(玉石俱焚)이 되고 있으니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지원 사업은 대부분 이른바 ‘소액다건’이다. 옥석을 제대로 가리는 것이 힘들고 시끄러우니 모두에게 골고루 조금씩 지원하자는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다. 그것은 결국 전부를 ‘삼마이’ 취급하는 문화예술에 패악이 될 수 있다. 작가 개인적 차이도 차이지만 장르별 차이도 크다. 엄연히 존재하는 각 장르의 중요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동가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문학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오랜 전통의 신춘문예 상금이 무엇 때문에 장르별 차이가 있는지는 좋은 본보기이다.
소설집 발간 300만 원, 도대체 이 액수가 10년 전 액수인지 20년 전 액수인지 아무튼 지원금이 300만 원 또는 400만 원이다(서울 경기는 소설집 지원금이 최소 1000만 원). 예산이 적다는 주장은 예산집행에 있어서 경중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곳에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정말 저런 행사가 부산의 문화예술에 도움이 될까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 모든 예술이 다 중요하다는 시각이면 예술에 까막눈이다. 진정으로 부산문화예술을 지원한다면 그 차이를 더욱 부추겨 저하된 창작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원 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옥석구분이 그래서 핵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신청절차도 매우 복잡하다. 예술인들이 대부분 서류 작성에 매우 서툴다. 문학의 경우 핵심은 창작물이고 그 결과물이 책을 발간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영수증이며 계산서고 신청의 핵심 사안인 것이다. 나머지 서류는 행정직원들이 알아서 해야지 않는가. 서류 작성이 어려워 신청을 못 하는 예술인 특히 나이 든 분이 많다. 유능한 작가가 서류상의 어려움 때문에 아예 신청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문단에서 이미 성과가 입증된 중견·원로 작가의 작품집을 신인상 심사하듯이 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문화재단쯤 되면 어지간한 작가들의 업적은 파악하고 있어야지 않는가. 서울지역은 정산 자료로 책 한 권만 제출하면 끝이다.
‘삼마이는 절대로 자신을 삼마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삼마이라는 것을 알면 이미 삼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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