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여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산타’는 외국, 특히 서양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그저 종일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날, 특선 만화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1990년대 초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였을 것이다. 그날도 눈 내리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마스 특집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만화를 다 보지도 못하고 부모를 따라나선 겨울밤. 이불장 구석에 처박힌 ‘돕바’를 꺼내 입고 가는 길. 세상은 온통 나프탈렌 냄새로 가득 차 있고 어른들은 아이인 우리만큼 들떠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삼십대 초중반의 동네 어른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시내 자그마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자녀를 대동한 채였다. 산동네 초입 쪽방에 사는 ‘나비 삼촌’이 일하는 곳이었다. 나비 삼촌은 하얗고 고운 얼굴과 당시 유행하던 ‘멀렛’ 헤어스타일을 한 젊은이로, 쇼를 하는 사람이었는지 웨이터를 하는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 같이 저녁 외식을 하고 들어선 나이트클럽은 컴컴한데 반짝거리는, 한마디로 희한한 곳이었다. 나는 노랫소리가 내 몸과 심장을 쥐고 흔드는 진동에 홀렸다가 천장을 열심히 도는 사이키 조명에 홀렸다. 어른들을 포함해 나이트클럽이 생애 처음인 우리 모두가 그렇게 홀려있었고 주눅 들었다. 그날 어른들은 평소와 달랐다. 비싼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넘쳐나는 홀에 나가 춤을 췄다. 아이들은 각각 자신의 부모가 어디쯤에서 몸을 흔드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목이 빠져라 머리를 들었고,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것이 놀이의 전부였던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어른들은 어설픈 춤을 추느라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백 원짜리 죠스바 하나에 행복해하던 아이들은, 평소 잠자리 들 시간에 삼백 원짜리 빵빠레를 정신없이 핥으며 처음 보는 ‘노는 어른’을 구경했다. 아이들이 있어서 술 마시기를 자제하던 어른들은 취하지도 않았는데 과하게 웃고 움직였지만, 아이들은 의젓했다. 아니, 성진이라는 아이는 용감하게 홀에 나가 쑥스러워하는 엄마와 함께 춤도 췄다.

동네 어른들은 금세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면 머쓱하게 웃었다. 어른들도 처음이라 어색했나 보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한 여성댄서의 춤이었다. 그녀는 춤을 추다가 아슬아슬하게 한 겹씩 하의를 벗었다. 세탁소를 하는 우리 집에 클럽용 무대복이 세탁물로 들어올 때가 있어서 놀랍진 않았다. 댄서는 분명 마지막 한 겹일 것이라 짐작되는 옷의 끈을 풀었고 바로 암전이 되면서 ‘쑈’는 끝났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옆자리 아줌마가 “간도 크다. 진짜 다 벗었나?”라고 중얼거렸고, 그 아줌마의 자녀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빤스 안에 또, 빤스 입었더라.”

그날의 일을 그림일기에 그린다면 제목은 ‘문화충격의 밤’이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날의 일들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 우리 일행은 모두 아이들 같았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다음 날 크리스마스에 어김없이 가게 셔터를 올리면서도 한동안 아이들과 어른들은 서로에게 순한 사슴처럼 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기 예수, 고요한 밤, 산타와 루돌프가 먼저 떠올라야 하는데 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위치가 역전됐던 그 밤을 떠올린다. 그날 우리는 모두 ‘일탈’을 통해 서로에게 어떤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타가 ‘간절히 꿈꾸던 것,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서로의 즐거움을 지켜봐 주던 그날의 우리 모두는 산타다.

‘착한 일을 하면 선물을 받는다’는 노랫말은 그대 안의 산타를 불러내는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겐 산타다. 만원버스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아줌마,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청년, 늙은 강아지를 등에 업고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까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잠깐의 산타다. 크리스마스까지 약 일주일.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