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모처럼 고기 구워도 상 끄트머리에 앉아 좀처럼 젓가락을 대지 않는, 비가 오는데 등굣길에 뛰어나가는, 모자라는 애처럼 보일 정도로 양보심 많은 아들이 있었다. 책과 기타를 좋아하는 아들이었다. 아들에게 숫기가 없다고 핀잔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아들은 제일가는 자랑이었다. 아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방을 구했다. 아들은 학과 오리엔테이션을 이틀 앞두고 학교 앞 지하 자취방에서 연탄가스에 질식사했다.

나는 새해 첫날밤을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지샜다. 나는 새해 첫날을 눈물과 통곡으로 시작했다. 새해 둘째 날 아침에는 운구차를 타고 산에 갔다. 하관을 위해 얼어붙은 땅을 파던 사람들이 불완전하게 멈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봄이 오면 봉분을 다시 손보겠다고 했다. 이제야 안식을 얻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드디어 슬픔 없는 곳으로 가셨을까? 아들을 잃은 후로 수십 년간 그녀의 삶은 한시도 온전하지 않았다. 남은 자의 삶은 어떻게든 지속된다지만, 음식의 맛도, 계절의 분위기도, 밤과 낮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손을 붙들고 “내가 죄인이다. 살아서 뭐하냐”고 말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뚜렷해지는 기억이 있다. 한 존재의 부재로 한 세계가 끝나는 것. 나는 그 친구를 첫사랑이라고 말한 적 없다. 첫사랑 이전의 사랑으로 남은 사람을 뭐라 부를까? 또다시 닥쳐온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복 받으려고 기원할 때 누군가의 복을 빼앗는 건 아닐까? 기억과 경험을, 상상을 기록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언젠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서, 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 더 적절한 정의는 없을 것이다” 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사유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시는 한 개인의 끔찍한 고통과 자책감에 답을 찾으려는 발버둥일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과정 속에 탄생하는 작품들도 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의 사망사고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가 내 잘못이라고 자백할 수 있었는가?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심보선, ‘갈색 가방이 있던 驛’부분)

거슬러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어떠한가? 당시의 슬픔과 분노를 지금까지도 나는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말문 막혔음을, 말할 수 없음을 말한 시인들이 있다. 그들의 많은 작품 중에서 두 편의 일부를 읽어본다.

“아니, 아니……돌아가야 해요// 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 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으로,/ 끝내 와주지 않던 그, 나라라는 곳으로 가야 해요// 무엇보다, 숨어 우는 엄마에게로/ 숨 죽여 울어야 하는 아빠에게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오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이영광, ‘수학여행 다녀 올게요’ 부분)

그날 이후, 우리는 바다를 바다라고 부르는 데 주저했고 우리는 수학여행을 죽음의 동의어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갑작스러운사고로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아이를 잃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한꺼번에 침몰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살아 있는 유령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얼마 전에 발생한 강릉 펜션 사고 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와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해도 될까? 시는 복수의 장르는 아닐지라도 분노하는 것.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 나아가 이 세계를 자명하게 드러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감정이 아닐까?

“눈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발들은, 얼굴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나희덕,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부분)

시인·책방이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