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낯선 곳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덕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GPS가 그 역할을 한다. 지구궤도에 떠 있는 24개 이상의 인공위성이 전파를 발신하고, GPS가 그 중 최소 4개 이상으로부터 정보를 수신한다.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삼각법을 활용해 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했다는데, 그 방법이 스마트폰에 정밀하게 구현돼 위치를 계산해낸다.

위치는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한 정보다. 현재 위치를 파악해야 목적지까지 이동수단과 소요시간을 고려한 최종경로를 판단할 수 있다. 금융투자에서 목표수익률을 향한 현재 ‘위치’에 해당하는 정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투자자산의 ‘가격’이 바로 그중 하나다. 수요와 공급으로 대변되는 시장상황이 가격에 반영돼 나타난다.

1848년 미국 시카고에서 곡물을 거래대상으로 하는 상품거래소가 최초로 시작된 배경에는 공정한 가격을 찾으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곡물의 특성상, 수송에 시간이 소요되고 실시간으로 가격 확인이 어려우며, 계약이행에 대한 보장도 불투명하다. 상품거래소가 선물거래의 형태로 거래조건을 표준화하고 거래를 집중시킴으로써 비로소 공신력 있는 ‘가격의 발견’을 이끌어냈다. 곡물에서 시작된 파생상품시장은 외환, 금리를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주가지수 선물옵션시장까지 분야를 넓혀 크게 발전했다.

파생상품의 등장 이후 그 가격이 적정하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면 시장신뢰도가 낮아지고, 투자자의 거래비용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적정가격 발견에 관한 연구 중 슈퍼스타는 1997년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한 ‘블랙-숄즈 모형’이다. 이 모형으로 파생상품시장의 한 축인 옵션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투자자가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운행 중에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GPS가 여지없이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란 경고메시지를 보낸다. 금융시장에서도 현물, 선물, 옵션 등의 가격이 적정수준을 유지하지 않으면 ‘괴리율’이라는 지표로 투자자에게 알려준다. IT의 발달로 이 같은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고, 시장이 빠르게 반응하면서 이상가격이 곧바로 적정 수준으로 돌아온다. 코스피 주식시장, 코스피200선물, 코스피200옵션 등과 같이 동일한 기초자산에 대한 현물 선물 옵션시장이 상호연계 거래되면서 어느 시장의 가격이 이탈하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은 언제나 균형가격을 찾아가지만, 단기적으로는 일시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변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각 거래소는 시장 안정성을 높이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한다. KRX 파생상품시장에 도입된 서킷 브레이커스(Circuit Breakers), 실시간 가격제한 등이 대표적인 시장급변에 대응한 제도다. 투자자가 스마트폰, HTS 등을 통해 손쉽게 접하는 가격정보는 거래소를 비롯한 많은 금융기관의 적정가격 형성을 위한 노력이 숨어 있다.

중세시대에 먼 곳으로 항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선원이 가진 미지의 항로에 대한 공포였다고 한다. 지도, 나침반, 천체관측기구 등으로 선박의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중세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현물시장 중심의 금융시장은 파생상품의 등장으로 그 범위와 다양성이 엄청나게 확대됐다. 최근 인기가 높은 ELS, ETF, ETN 등 구조화 금융상품의 핵심은 바로 파생상품의 활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올해 KRX 파생상품시장은 KRX300선물, 코스닥150옵션 등 신상품개발과 실시간가격제한 적용 확대 등 제도개선을 이어나가며 투자자의 힘찬 대항해에 함께했다. 2018년 한 해가 끝이 나고, 1월 2일 한국거래소의 개장신호와 함께 다시 숨 가쁘게 달려갈 2019년 자본시장이 다시 시작된다. 기해년에도 KRX 파생상품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장 활성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KRX 파생상품시장은 어둠 속 등댓불처럼 주간 정규시장부터 글로벌 야간시장까지 쉼 없이 금융투자시장의 불빛을 밝혀 나갈 것이다.

KRX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