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김태우 전 수사관과 기획재정부 국고국에 근무하다 퇴직한 신재민 전 사무관의 연이은 내부고발에 정치권의 진영논리가 가세하면서 가뜩이나 먹고살기에 팍팍한 국민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고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자세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선 오만하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의 ‘유전자’ 발언은 압권이다. 김 대변인은 민간인 사찰을 부인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전자 자체가 과거 정권과는 다른 ‘도덕적인 유전자’를 가졌다는 선민의식의 표출이다. 그는 또 “민간인 사찰 보도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곧 ‘정의’이자 ‘절대적 선’이고, 비판은 ‘적폐’들의 목소리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발언이다. 하기야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 부재 중에 장관을 대동해 전방부대를 시찰하고, 민정수석은 공개적으로 현직 판사를 훈계하는 마당이니 청와대 대변인의 오만을 나무랄 것도 아니다.

김태우 전 특감반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을 향한 여권의 ‘언어폭력’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윤영찬 홍보수석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라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던 직원을 ‘미꾸라지’에 비유한 것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한 여권의 언어 폭력은 훨씬 도를 넘었다. 신 전 사무관의 고발이 그만큼 더 아팠기 때문일까. 여당의원들은 인격 모독에 가까운 발언까지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꼴뚜기(김태우)가 뛰니 망둥이(신재민)도 뛴다”고 했다. 손혜원 의원은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 “불발탄 양손에 든 사기꾼” “돈 벌기 위해 사기 행각 벌인 가증스러운 자” “막다른 골목에 이른 도박꾼” 등으로 표현했다. 손 의원은 특히 자살을 암시했던 신 전 사무관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본인 행동에 책임질 만한 강단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살을 암시했던 사람에게 ‘강단’이 뜻하는 의미는 뭘까.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의 진위를 따지기보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데 급급한 것이다.

앞뒤가 너무 다르지 않나. 민주당은 야당시절 내부고발자를 영웅시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한 고영태는 ‘의인’으로 추켜세우며 ‘공익제보위원회’까지 만들어 내부고발을 독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익 제보자 보호 강화’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정권출범 직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공익신고자 보호강화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당으로 입지가 바뀌는 순간 공익제보자에 대한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의인’의 입지는 불과 2년 만에 ‘미꾸라지’ ‘망둥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의인’은 결구 ‘우리 편’일 때 적용되는 것이었다. 야당에서 “정권 입맛에 달면 ‘공익신고자’이고, 쓰면 ‘공무상 비밀누설자’인 것이냐”라고 비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다 못해 ‘같은 편’인 참여연대까지 여권을 힐난하고 나섰다. 침묵하던 참여연대는 신 전 사무관의 폭로 6일 만인 지난 4일 “내부고발자에 대해 검찰에 고발부터 하고 보는 행태는 ‘입막음’을 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내부고발을 가로막는 고발과 소송 남발, 인신공격은 지양해야 한다”고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한 기재부를 비판했다.

실제로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날짜와 사람 및 대화내용, 소수점까지 거론한 국가 채무비율 인상 등 ‘술자리 방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인 묘사다. ‘국가채무’를 모르는 일반 국민이 들어도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의심하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국가채무를 늘리려 했다’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는 말 대신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주길 바란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일반 국민들이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신 전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이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쯤 되면 내부고발자를 단죄하기에 앞서 내용 파악부터 하는 게 순서다. 내부고발자를 비밀누설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이전에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입으로만 “우리는 과거 정권과 유전자가 다르다”고 말한다고 액면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다. 정권 출범 불과 1년6개월 만에 내부가 흔들리고 있는 사태를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울본부장·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