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이 봄을 향한 채비를 하는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신춘문예를 통해서 새롭게 신인이 등단하는 등용의 계절이기도 하다. 등용(登龍)이란 원래 용문을 오른다는 뜻으로 입신하여 출세의 길로 들어가는 관문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서 ‘이응전(李膺傳)’에는 선비로서 이응의 인정을 받은 사람을 용문에 올랐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말에서 ‘등용문’이 유래됐다고 한다.

실제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하진(河津)이라는 협곡을 말한다. 수많은 물고기가 협곡을 오르려 하지만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협곡을 오르는 물고기는 용이 되어 승천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고기가 협곡을 오르려면 비늘을 거꾸로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역린(逆鱗)이다. 원래 역린은 용의 머리 아래에 거꾸로 선 비늘을 말하는데, 역린은 물고기가 용이 되기 위해 비늘을 거꾸로 세웠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용의 노여움을 사서 죽음을 맞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역린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린을 꾀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반역의 비늘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을 꾀할 수가 없다. 반역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의 원동력이다. 이른바 전위예술(前衛藝術, avant-garde)이라는 말은 역린을 꾀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말한다. 껍데기를 부수고 나오는 탁란(托卵)의 과정처럼 비늘을 거꾸로 세워야만 비로소 등용문에 오를 수 있다. 등용문에 오른 용 또한 끝없는 역린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문 앞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역린을 세워서 용문에 오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역린을 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문학의 길이 열리고, 예술은 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이야말로 등용문을 향해 가는 끝없이 고단한 길이며, 등용문에 오른 뒤에도 끊임없이 역린을 꾀해야 하는 반역의 학문이다. 인문학은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 통하고 또한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인문학의 근본 이치이다. 유협은 ‘문심조룡’ 통변(通變)에서 문학은 통하고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한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결의 흐름에 따라 비늘을 가지런하게 두는 것을 말하고, 변한다는 것은 비늘을 거꾸로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역’의 계사(系辭) 하에서 “변하는 것은 통하는 것이고, 통하는 것은 오래 가는 것이다(變則通, 通則久)”고 했다. 궁하면 변하는 것이고, 변하면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통하면 오래가는 것이다. 결국 통하게 되면 달(達)하게 되는 법이다.

변하지 않는 인문학은 정체되고 사멸되는 인문학이다. 그렇다고 근본을 팽개치고 변화만 모색해선 안 된다. 물고기가 등용문에 오르기 위해 비늘을 전부 거꾸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물결의 거센 힘을 감당할 만큼만 거꾸로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순리와 반역이 조화를 꾀할 때 참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용의 머리에 남은 역린의 흔적은 그 조화를 상징한다. 인문학은 전통만 고집하고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위기를 맞았다. 전통과 근본 원리는 소중한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전통만을 고집한 채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자멸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선 거꾸로 선 비늘이 필요하다. 가지런한 비늘만으로 높은 곳에 오를 수 없고 거꾸로 비늘을 세워야만 높은 학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변화는 소중한 것이지만, 변화만을 강조하다가 근본을 잃어선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물고기가 용이 되었다고 해도 원래의 비늘을 벗어 던질 수 없으며, 또한 용이 되기 위해 꾀했던 역린의 흔적을 감출 수 없듯이 그 근본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꾸로 선 비늘일지라도 근본은 가지런한 비늘에서 출발한다.

다함(窮)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변하는 것이 원칙이다. 변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통하게 되는 것도 원칙이다. 또 다른 다함의 경지에 이르면 또한 변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원칙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반복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리가 있다. 그것은 인문학의 근본 원리일 것이다. 인문학의 근본이 무엇인지 통하고 난 뒤에 새로운 변화의 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체제의 근본을 알고 나면 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등용문에 오르기 위해서는 역린이 필요하지만 그 역린을 꾀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본에 통해야 한다. 근본을 잃지 않고 역린을 꾀해서 등용문에 오를 때 인간을 위한 통치를 할 수 있으며, 인간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예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역린만 세우느라 원래의 비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기는 비늘과 물결을 거스르는 비늘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등용문에 오르는 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