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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안거와 유네스코 문화유산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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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13 18:56:2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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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해인사 소림선원의 동안거를 촬영 중이다. 동안거란 불교에서 음력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 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정진하는 일 또는 그 기간을 말한다. 하안거는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이다. 안거제도는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시행돼 온 역사 깊은 제도이다. 오래전 인도의 출가한 수행자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우기가 오면 땅속의 벌레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을 뿐 아니라 교통 불편과 각종 질병 때문에 돌아다니는 데 어려움이 많음을 제자들이 부처님께 고했다. 제자들의 어려움을 아신 부처님은 우기 3개월 동안 돌아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고 한곳에 머물며 수행을 하도록 정한 것이 안거의 유래가 됐다. 이것이 한국에 와서는 여름에는 맹렬한 더위를 피해 공부할 수 있는 하안거,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동안거로 안착하게 됐다.

한국 땅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재위 2년인 372년. 이후 해인사가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이 창건했다고 하니 해로 치면 남북국시대인 802년. 자그만치 1200년 전 창건된 절이 바로 해인사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동안거, 하안거 역시 해인사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1200년은 족히 이어 왔을 터. 그동안 소림선원의 선문이 일반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도, 바깥으로 열려본 적도 없다고 하니 한국 선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맞고 있는 시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200년 한국 조사선의 비전이 문을 걸어 잠근 선방 안에서 승에서 승으로만 전수되었다고 한다면 일개 사진가의 동안거 촬영 허가 결정은 승에서 일반인에게 그 조사선의 비전의 문호를 일부나마 열기 시작했다는 이정표쯤 될 것이다.

20세기의 석학이자 역사학자인 토인비에게 기자들이 20세기 최고의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토인비는 2차 세계대전이나 아폴로의 달나라 착륙 대신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전파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땅의 선의 비전이 선방에만 머물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수될 선문이 열렸다는 것 그 자체가 수사들만 해독하던 라틴어를 일반인이 읽기 시작하고 성서대로 따라갈 수 있게 1517년의 유럽 종교개혁에 비견할 만한, 조용하지만 엄청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조용한 혁명이 불교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선방에 들어선 나는 소름이 돋은 채 석장승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늘이 떨어져도 천 근 쇳소리가 들릴 듯한 정적과 고요.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적막의 어두움 속에 익숙해지는 데 카메라를 든 채로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10분은 족히 지났을까. 사각거리는 옷소리를 죽여가며 발걸음을 떼고 적요를 잘라내는 셔터 소리는 바위가 떨어지듯 요란한데, 누구 하나 꿈쩍도 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돌부처처럼 깊은 삼매에 빠진 해인사 소림선원 선방은 고요에서 깰 줄을 몰랐다. 이러기를 자그만치 1200년 동안 이어져 왔다니! 이 고요 속의 절치부심이야말로 우리네 삶 그 자체가 아니던가. 이런 하염없는 생각이 들면서 급기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도 중국도 각자 나름의 선문화와 그 세계가 있다. 중국은 공산화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당했고, 일본은 섬으로 들어가면서 특이한 형태로 자신들의 환경에 어울리는 선을 나름 재구성했다. 결국 가장 반듯한 선문화의 원형을 한국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번 기회에 정말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재하는 것은 어떨까. 일개 필부의 하찮은 생각일지라도 세계 선문화를 전진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앞으로 동안거 기간은 반이 채 남지 않았다. 우리의 설이 끼어 있어 그때는 고유한 민속놀이도 절집에서 한다고 하니 촬영을 하는 나로서는 여간 기대가 되는 일이 아니다.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어 다시 절집의 동안거를 촬영할 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서 기록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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