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현민 부산시 행정부시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취임한 지 5개월밖에 안된 행정부시장이 사의를 표명하게 된 건 엘시티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7년간 받은 명절선물이 문제가 돼서다. “직무 관련성이 없었다”는 시의 감사결과와는 별도로 시청 직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아온 그였기에 사의는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마침 정 부시장의 사의 표명이 알려진 날 시는 4급 이상 간부 63%를 교체하는 민선 7기 두 번째 인사를 단행했다. 여기엔 ‘파격’ ‘발탁’ ‘최대’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부산시 입장에선 부시장의 사임이 이 인사 회오리에 묻히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에서 일어나는 이해 못 할 일들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거돈 시장은 시장 후보 때 엘시티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제기했고 시정을 맡으면 한 점 의혹없이 파헤치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그런 오거돈 체제의 첫 행정부시장이 엘시티에 연루돼 단명에 그치는 ‘사고’가 벌어졌다. 앞서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에 올랐던 정경진 전 행정부시장과 스포원 이사장 후보로 지명된 김종철 전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장도 같은 이유로 시의회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다. 이들이 시의 요직을 거쳤기 때문에 엘시티 관련 검증만큼은 더 철저했어야 하는 일이다. “초대형 정경유착, 부산 적폐의 대명사” “엘시티 게이트 특검 요청” 등 오 시장이 핏대 세워 외쳤던 이 구호는 선거 때 그냥 해본 말이었나, 아니면 시에 아예 검증기능이 없었나.

부산시가 딱한 건 유재수 경제부시장 역시 논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 부시장은 2017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조사를 받았고 이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확인까지 해준 사실이다. 문제는 부산시의 대응방식이다. 시는 본인보다 더 나서 유 부시장을 감싸고 돌았다. 혐의 내용과 관련해선 “우리도 모른다”는 설명뿐이다. 기가 막힌 건 부산시가 감찰 내용을 진짜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데 있다.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부산시가 위에서 꽂으면 그냥 꽂히는 곳이 됐다”는 공무원들의 자조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이는 박태수 정책특보이다. ‘왕특보’라 불리는 박 특보는 지난 연말 ‘부산시 정책특보 입장문’이라는 글을 냈다. 자신의 인사 천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낙동강 에코센터 민영화 문제로 공무원과 마찰을 빚다 사표를 던지는 등 튀는 행보를 보여온 그다. 이날 입장문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이 대목이다. ‘전반적인 시정의 관리와 운영은 공직사회의 몫이다. …일상적인 정무 보좌업무는 비서실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비서실에 유능한 공직자들을 배치하고 정무직 비서관들도 일부 확대해서 역량을 보강하기로 했다’. 글만 보면 특보가 아니라 시장이 쓴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시정의 관리와 운영은 원래 공무원 몫이었다. 그동안 정무라인이 시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이렇게 당당하게 밝힐 수 있나. 더 놀라운 것은 오 시장이다. 숱한 논란에도 박 특보를 별정직 5급에서 부시장급인 2급으로 무려 3계단이나 특진시켰다. 아무리 시장이라도 이렇게 공무원 위계를 흔들어도 되는 것인가.

마무리 국면에 있는 시 산하 공기업 인사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사·공단 6개와 출자·출연기관 19개 기관 중 부산테크노파크 원장과 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제외하곤 기관장과 임원 인사가 사실상 끝났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선거 공신 챙기기와 낙하산 등 구태가 그대로 반복됐다. 체육학과 교수가 부산관광공사 사장이 되고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디자인센터장이 되는 식이다. 최근엔 업무 관련성이 전혀 없는 전직 총경이 부산환경공단의 상임감사에 낙점되기도 했다.

오 시장은 1974년 부산시 사무관에 임용된 후 2004년 부산시를 떠나기까지 30년을 대부분 부산에서 근무했다. 시정의 여러 분야를 섭렵해 행정의 달인 소리를 들었다. 공직을 마감하는 퇴임사에서 복귀를 다짐하며 했던 “I will be back”이란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런데 14년 만에 컴백한 친정에서 예전의 평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화통하고 유머러스한 오거돈은 사라지고 불통과 버럭, 권위의 오거돈으로 변했다는 불만이 자꾸 새어나온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듯한 이 어색함은 뭘까.

부산은 대한민국 제2도시의 위상을 인천에 추월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신공항, 오페라하우스 등 난제도 산적해 있다. 부산 시정의 키워드가 더는 ‘정무라인’ ‘낙하산’ ‘실험’이 되지 않으려면 오 시장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되찾길 바란다. 그게 오 시장에게도 좋고 부산에도 좋을 것이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