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십여 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왔다. 부산으로 온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이제 막 시작한 신혼생활을 서울에서 온전히 해내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컸다. 아이가 곧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아내와 나는 모두 지방출신이었고,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결국 조금 더 우리 삶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육아에서 부모님의 도움도 얻을 겸, 비교적 저렴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할 계획으로 고향 부산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는 ‘셋의 삶’을 시작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부모님이 아이를 맡아주는 일에 무척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영화를 본다든지, 카페를 간다든지, 둘만의 외식을 할 수 있었다. 두어 번은 경주나 남해처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정신 없는 육아 중에 반찬을 해주시거나, 종종 집안일을 도와주신 것도 가뭄의 단비 같았다. 우리는 부산으로 와서 지내기로 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만약 연고 없는 서울에서였다면, 모든 일이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주거를 얻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일, 스물네 시간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를 돌보는 일 속에서 지쳐갔을 것이다. 어쩌면 제대로 된 삶은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님의 적절한 도움 덕분에, 적어도 우리는 안정적인 행복을 일궈나가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식 합계 출산율은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현재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은 2.1명이라 이야기된다. 심각한 저출산 국가들도 1명대를 유지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극심한 저출산 국가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지방의 삼분의 일은 소멸하고, 경제동력을 상실하며, 결국 세계 최대의 고령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토록 저출산이 극심해지고 있는 데는 비교적 명확한 이유가 있다. 젊은 층들에게 결혼이 더 이상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십여 년 전,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3포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N포세대라는 말이 당연시되고 있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 꿈과 희망 등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청년세대라는 것이다. 이를 청년층의 엄살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실제로 청년 실업률은 역사 이래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양극화와 관련된 주요 지수도 악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청년들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마음을 열고 있다. 혼자 사는 싱글족, 결혼하지 않는 비혼족, 아이 없이 사는 부부를 일컫는 딩크(DINK)족으로서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가치관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참고하면, 여전히 과반수의 청년은 결혼하여 부모가 되는 일을 원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기에 이를 대체할 인생관에 더 마음을 여는 것이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는 선택은 온전한 선택이 아니다. 이를 단순히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다양해졌다’라고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큰 청년 세대의 포기와 절망이 전제되어 있다.

내가 결혼과 육아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스스로의 능력 덕분은 아니었다. 또한 그를 위해서 10년 넘게 지내던 서울에서의 생활도 포기해야 했다. 여전히 집은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삶을 살아나가고 싶어 결혼을 했고, 또 늦기 전에 아이도 가졌다. 살아보니, 이 삶의 가치를 알게 된다. 힘겹고 정신 없을 때도 있지만, 매일이 사랑으로 가득 찬 수조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을 느낀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이가 그런 삶을 적어도 고려해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포기와 행운이 전제되지 않더라도 함께하는 삶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문화평론가·‘분노사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