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부산박물관에서 펴낸 박물관연구논집에 아주 고마운 글이 실렸다.김부환 전 부산시 기획실장이 집필한‘시립박물관 건립에 관해서’라는 옥고였다.

그야말로 부산박물관의 역사적 건립에 대한 역사를 상세하게 알려 주는 내용이었다. 필자도 직전 근무지가 작년에 40주년이 된 국립광주박물관이어서 부산박물관을 지역시민과 유지 및 당시 시 관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시립으로 만들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상세하게 알지는 못하였다.

글 내용에는 우리 젊은 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현대사가 실려 있다. 작년 대한민국의 수출액이 6000억 달러를 돌파하였지만, 1970년에는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매진하던 시기였고, 전국 수출량의 30%가 부산항을 통해서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부산시장 주관으로 매달 한 번 수출업체 사장들과 조찬회동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모 회사 사장이 당시까지 수출품들이 외국 것을 모방하는 단계이므로 상품 디자인의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 설립의 필요성을 건의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부산시의 도시계획 과정에서도 박물관 미술관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제기되었으며, ‘장 프랑소와 밀레’의 그림을 전시할 장소를 찾기 어려워 프랑스 대사가 직접 와서 부산은행 강당으로 결정한 일과 같은 당시의 상황들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전국 최초로 시립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언론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춘 기사들을 싣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침내 1973년에 건립비 6억5000만 원과 공사기간 3년의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이후 부지도 현재 장소로 결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넓은 땅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다 한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 박물관을 보면 그때 그 정도라도 확보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 부산박물관의 부지는 이후 추가로 지어진 부산관과 유물 관리동의 증축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멋진 건물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내용은 전시유물의 확보와 관련된 것으로, 부산 기업인의 유물기증 과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당시 부산의 대표적 고미술품 소장가로 동양고무 현수명 회장과 강덕인 치과원장 외에 여러 명사가 소개되었는데 이 중 강덕인 원장의 딸은 후에 필자와도 잘 알게 되었으니 부산박물관과 필자의 인연도 결코 얕지 않다. 부산박물관 기증실 입구를 채우고 있는 현수명 회장의 유물은 당시 가격으로 박물관 건립비 18억 원보다 많은 21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한편 기증유물 중에서도 부산박물관의 가장 대표적 유물인 국보 200호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의 기증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박물관 준공이 다가오자 부산의 재벌급 인사들로 박물관 후원회를 만들고 회장으로 부산의 대표적 기업인이던 김지태 회장을 모셨다.

소장한 유물이 없었던 김 회장이 회장으로서 유물 한 점을 기증하고 싶으니 합당한 것을 찾아보라고 하였는데 당시 동구 수정동에 살고 있던 오모 씨가 소유한 금동보살입상을 추천하였고, 거래가 성사되어 부산박물관의 대표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의 명성은 어릴 때 동래군 철마면에 살았던 필자도 알고 동요처럼 흥얼거린 기억이 있는데, 참으로 사람의 인연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도 어떤 식으로든 닿아 있는 것 같아 숙연해질 뿐이다.

박물관 개관 이후 시민들로부터 기증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황태섭 씨의 부산시유형문화재 제77호인 ‘어전준천제명첩’(영조 때 청계천 준설 기록화)과 쇠미산 금용사 무불 스님의 고종어필, 조선 후기 불상 등이었다. 심지어 현재 박물관 직원의 시댁 어른인 고고학자 이은창 선생의 유물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부산박물관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시민의 것임이 더더욱 확실하지 않은가.

이러한 부산박물관의 건립과 관련된 내용은 박물관 누리집 학술연구활동 도서발간에 항목에 올려져 있으므로 보다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부산박물관의 새내기 관장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국내 최초의 부산박물관은 부산 시민의 것이요, 자존심을 대변하는 상징이므로 편안하게 찾아오는 공간으로서 잘 가꾸어 가고자 한다.

부산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