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다보니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시나브로 늙어 노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운명(殞命)의 시간이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시간의 나이테를 짊어지고 저무는 몸을 견디다가 죽음을 맞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서 사유재산제 아래의 인간에게 ‘상속’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분쟁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자극적이고 민감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죽음과 그와 동시에 개시되는 상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상속을 법률적으로 정의하면 ‘피상속인(사망자)의 사망에 의하여 상속인이 피상속인에게 속하였던 모든 재산상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상속에 대해서 적극적인 재산을 이어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소극적인 재산, 즉 채무도 함께 상속인에게 상속된다.

예컨대 사업을 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아버지가 마지막에 채무 2억 원을 남긴 채 사망했다면, 상속인인 자녀 갑(甲)과 을(乙)은 1억 원씩의 빚을 상속받는 셈이 되고 갑과 을은 자기의 고유재산으로 상속받은 빚을 갚아야 하는 불행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평안감사도 자기 하기 싫으면 그만’인데 하물며 상속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 민법은 상속포기의 자유를 인정하여 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경우에 상속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두고 있고 상속된 재산의 가액을 초과하는 채무에 대해서는 갚지 않아도 되는 한정승인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상속재산에서 과다한 채무를 전제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의 문제는 우리 같은 서민들의 고민일 뿐이다. 재벌가 총수는 2세, 3세에게 부동산과 주식, 현금 등을 상속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들은 주로 상속 또는 증여할 법인의 주식가격을 실제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조작하거나 계열기업 간 내부거래를 통해 편법상속을 하기도 하고 총수 자녀 소유의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손쉽게 돈을 벌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다. 이외에도 필자가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방식과 꼼수로 다양하게 탈세와 절세를 진행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례가 비단 재벌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종 포털이나 세무회계 특강에서 ‘상속 잘하는 방법’이나 ‘상속세 절세하기’와 같은 주제의 콘텐츠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탈세와 절세를 하고 싶은 열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죽음과 세금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의 세습이 갈수록 심화되고 젊은이들 사이에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자조하는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어가 된 가운데 몇몇 뜻있는 기업가나 부자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실천한 흐뭇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뿐만 아니라 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재해가 발생하거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 기부를 하기도 한다. 내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 꺼내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도 인색한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자선 기부를 하는 것만 해도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자선 기부는 다소 즉흥적이고 단발적이다. 그래서 기부를 넘어 양식 있는 기업가와 시민들이 아낌없이 내놓은 자산으로 ‘사회적 투자기금’을 만들어 이 기금으로 우리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 인재 양성,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자원을 구축하는 데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래서 부의 세습으로부터 생기는 사회의 불평등을 조금씩 바로잡아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부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지금 세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