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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섬진강에서 엿본 봄의 경이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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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28 19:03:3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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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이 말은 지난해 남북평화 협력 기원 평양공연 때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다. 남북 간, 북미 간 정상회담이 있었고,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입춘이 코앞이고 설이 눈앞이다. 세월이 쏜살같다. 세월은 저 먼저 가버린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다시’ 대신에 ‘새’ 자를 써야 하는데, 마음이 그리 끌리지 않는다. 왠지 오는 봄이 무섭다. 그냥 감이 아니다. 미세먼지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고, 나라 경제는 더 꼬일 조짐이다.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 속에서 숨쉰다나. 고약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나랏님도, 하늘님도 이 사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최근 뉴스라고 뜬 것이 유력 국회의원의 투기 논란과 재판 청탁 의혹, 체육계 성폭력 추문, 전직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구속 따위다. 뉴스들조차 잔뜩 흐리다.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북항 오페라하우스는 무슨 콘텐츠를 채울 것이며, 다시 깃발을 세운 가덕도 신공항은 무슨 수로 난관을 뚫을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머리를 식힐 겸 여행을 겸해 섬진강으로 달렸다. 지리산 청정지대에서 생산되는 취나물 출하 소식에 상큼한 봄맛이 그리워졌다.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한옥 체험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화개골에서 달콤쌉싸름한 녹차를 실컷 마셨다. 국사암의 1200년 된 느티나무는 움을 틔우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귀촌한 조해훈 시인이 운영하는 고서 박물관 목압서사(木鴨書舍)에서 뜻하지 않는 문자향도 맛보았다. 목압서사에서는 오는 4월 9일까지 ‘조선 시대 화개골의 선비들’ ‘화개골의 시인·작가들’을 주제로 전시회를 갖고 있다.

섬진강으로 무장무장 이른 봄이 진군해오고 있었다. 동장군이 성성한데도 섬진강 주변 지자체들은 봄꽃 축제 준비에 바빴다. 올해 구례 산수유꽃 축제가 3월 16~24일, 광양 매화축제가 3월 8~17일 열린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곤 움츠린 어깨가 약간 펴졌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 시가 흥얼거려졌다.

‘봄은/성숙해 가는 소녀의 눈빛/속으로 온다//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봄은/피곤에 지친 춘향이/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봄은/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오세영의 ‘봄’ 부분).

봄이 온다는 확실한 느낌은 ‘경이(驚異)’였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부르통이 말하지 않았던가. “경이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경이로운 어떤 것도 아름답다. 사실은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고.

경이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강에서, 암자에서, 고서에서, 녹차향에서 봄 냄새를 맡고, 봄 기운을 호흡하는 것, 그게 경이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존재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따라 경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의 발단’이 되는 것을 경이(thauma)라 했다. 경이를 느끼면 비로소 지혜를 구하기 시작한다. 철학의 출발이다.

올겨울은 추위가 덜해선지 섬진강이 얼지 않았다.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도시의 갑갑증과 답답함이 눈섞임물처럼 풀어졌다.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우리도 강처럼 유연하게 흐르면서, 세상의 경이에 더욱 눈을 떠야 한다는 것.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잠시, ‘아, 그게 살길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퇴계 이황은 안동 도산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보고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는 명언을 남겼다. 선인들은 자연과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 난관을 이겨냈다. 공연한 생각과 쓸데없는 걱정, 욕심부터 줄여야겠다. 경기가 안 풀린다고 언제까지 푸념과 불평만 하고 있을 것인가. 수입이 적다고 언제까지 자신을 윽박지를 것인가. 미세먼지가 일상이고, 경기 침체가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다가갈 수 없고, 만져지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 놔두는 지혜가 때때로 필요하다.
봄이 온다. 솔직히 두렵지만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견디고 이겨낸다는 생각이 희망의 새순처럼 여기저기 돋아나면 난관은 뚫린다. 두려움을 공포가 아닌 경이로 받아들이는 경지, 그런 철학을 퍼뜨려야겠다.

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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