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라는 것이 당연시되고, 누구나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면 안정적이고 적절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노동환경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 고용 없는 성장의 고착화, 일자리 유연화에 따른 불안정한 일자리의 확산, 비전형 노동과 플랫폼 노동 같은 제도권 밖 노동의 확대가 주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의 장년층이 지나온 평생직장 시대는 필자와 같은 청년세대에게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다. 심지어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공교육만 마치거나 대학에 진학하면 무조건 꽤 괜찮은 직장을 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받는 학위의 분별력이 떨이지기도 했거니와 대학 교육이 직장 등 노동 현장과 연계성이 떨어지면서 대학 졸업이 곧 취업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반 4년제 대학교 진학률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으며, 사교육이 그 자리를 재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급박한 현실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제도는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에게 재빠른 일자리로의 위치 이동만을 주문할 뿐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당장 일자리로의 이행이 힘든 청년에게는 자산형성의 기회 자체가 박탈된다는 것,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겪는 감정적 어려움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뒤처진 교육환경으로 인해 진로 설정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 등을 알지 못한다. 제도가 현실에 뒤처짐으로써 겪게 되는 청년들의 상실감과 불안, 답답함은 이루 말하기조차 힘들다.

현실은 변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제도의 한계, 현실과 제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일상의 불안정, 그리고 교육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과정에 이 모든 문제를 복합적으로 겪게 되는 청년세대가 존재함을 정책당국이 간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정책은 청년의 삶 전반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여전히 일자리 창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산시는 얼마 전 시장 직속 시민행복추진본부에 청년정책담당관을 두던 방식에서 경제부시장 산하 성장전략본부 청년희망정책과로 운용하는 조직개편을 진행했다.

민선 7기에 들어서야 청년 관련 독립부서가 설치되어 부산시 청년종합정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 같다는 기대가 컸는데, 이번 조직개편을 보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후퇴하지나 않을지 우려스럽다. 2003년 청년대책이 도입된 이래 한국 청년정책은 일관되게 청년 일자리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노력과 현재의 노력이 무엇이 다른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 노력의 결과가 과연 어떠했는지,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미 청년들은 “청년의 삶은 변했는데 왜 정책은 그대로인가?” “N포세대는 누구의 정의인가?” “출산은 선택일 수 없나?” “청년들의 눈높이가 문제인가, 하향취업을 강요하는 정부가 문제인가?” “공정한 기회는 어디에 존재하나?” “이미 청년부채 비율이 높은데 왜 빚을 지게 하는 정책을 만드나?”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청년주거대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와 같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전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면 새로운 관점을 찾기 위한 소통전략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심오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