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사직서를 내라면 내야 할까? 요즘 20대들은 먼저 근로기준법을 들먹인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 고참, 상사, 웃어른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데 익숙한 문화다. 그런데 사장이 누군가. 상사 중의 상사 아닌가. 까라면 까고 사직서도 쓰라면 써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사장은 동등한 근로계약의 상대방일 뿐이다. 그러니 사직서는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지 누가 시킨다고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장이 시킬 때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왜일까?
주택이나 원룸 전세계약(대개는 민법상 임대차계약)은 대부분 해봤거나 봐서 대충은 알 것이다. 전세는 보통 2년 단위로 계약한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세가가 올랐다며 입주 석 달 만에 나가라고 한다면 세입자는 순순히 나가야 할까. 당연히 계약기간까지는 안 나가도 되고 설령 나가더라도 복비는 받고 나가야 한다. 근로계약도 마찬가지다. 해고는 일방적인 근로계약의 파기다. 계약기간 내에는 마음대로 나가라고 못 하고, 설령 나가더라도 명예퇴직금이라도 받고 내 발로 나가야지 않겠는가. 기간제가 아닌 무기계약직, 정규직의 경우는 법률상 정년인 만 60세까지가 근로계약기간이다. 다시 말해 일단 취직했으면 60세까지는 사장 마음대로 해고는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 명예퇴직금을 준다. 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회사 사정 때문에 일방적으로 파기하니, 명퇴금 받고 부디 스스로 사직서를 써 달라는 부탁이다.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돼 있다. 사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근로기준법 제23조). 판례상 정당한 이유는 근로자가 업무상 엄청난 비위나 잘못을 저질렀거나, 운전기사인데 면허가 취소됐다거나, 아예 감옥에 갇혀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정도의 사정이 없다면 근로계약기간 내에 일방적인 계약파기, 즉 해고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정리해고다. IMF 외환위기 이후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두었다(근로기준법 제24조). 그런데 절차가 제법 까다롭다. 일단 정말로 긴박한 경영문제가 있어야 하고, 해고회피 노력을 미리 했어야 하며, 공정한 해고 대상자 기준을 정하고,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대표에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해고 인원이 많으면 노동부에 신고도 해야 한다.

이런 절차 중 하나라도 어기면 그 정리해고는 모두 무효다. 그래서 대개 큰 회사들은 명예퇴직을 실시한다. 위로금을 줄 테니 스스로 사직서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많은 회사 사장은 위로금도 없이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하곤 한다. 왜? 위로금도 주기 아까워서 그렇다. 사직서도 쓰라면 알아서 쓰는데 왜 굳이 위로금을 언급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깨우쳐 주겠는가.

그럼 끝까지 사직서를 안 쓰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근로계약기간(정규직은 60세까지)동안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된다. 혹 나가라고 하니 더러워서 계속 못 다니겠다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더러워도 홧김에 사직서는 쓰면 안 된다. 차라리 그냥 해고당해야 한다. 해고를 당하면 십중팔구 부당해고가 될 것이므로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접수하면 된다. 부산은 금정구 금사동 탑마트 근처에, 경남은 창원시 팔용동 버스터미널 뒤에 있다. 구제신청을 하면 아마 십중팔구는 몇 달 치 월급에 상응하는 위로금을 받으며 합의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약으로 치면 복비라도 받고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하는 자에게 법이 부여하는 정당한 권리다.

그럼 권고사직은 뭘까. 사장이 사직서 쓰라고 해서 쓰는 게 바로 권고사직이다. 그러니 이건 해고가 아니다. 사직서를 쓰는 순간 위로금은 절대 받을 수 없다. 다만 권고사직으로 인정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는 있다.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