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지난 탄핵 촛불 때처럼 시민운동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댓글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한국당의 공세가 대선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제기로 연결되자 민주당이 또다시 ‘촛불정신’을 들고 나왔다. 정권출범 이후 야당의 공세에 막힐 때면 마치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임을 내세워 왔다. ‘촛불 민심’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해온 지 오래다.

현 정권이 촛불민심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은 분명하다. 정권의 정당성 측면에서는 얼마든지 촛불민심을 내세울 수 있다.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행위의 정당성을 얘기할 때는 다르다. 촛불민심이 정권 탄생 이후의 정치행위에까지 정당성을 부여했을 리는 만무하다.

민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촛불집회의 목표 = 민주당 정권 탄생’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촛불민심은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아주길’ 원했던 것이고, 당시 집권세력의 대안으로 민주당을 선택했던 것뿐이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면서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김 지사 구속 이후 민주당의 대응은 집권세력임을 의심케 한다.

김 지사가 전격 구속된 날 저녁 민주당은 국회 법사위와 사법개혁특위 소속 의원을 전원 투입한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매머드급 ‘사법 농단 세력 및 적폐 청산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초당적 대응에 나섰다. 김 지사 항소심 재판부를 압박하기에 충분한 규모다. 박주민 대책위원장 등은 “전국에서 설명회와 대국민보고회를 열고 시민사회와도 힘을 합칠 계획”이라며 “항소심을 맡을 서울고등법원의 판사들도 절대다수가 사법 농단과 관련된 판사들이라 걱정”이라고까지 말했다. 김 지사의 항소심 재판부에 “알아서 해라”는 메시지로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느낌일까.

민주당은 이튿날 곧바로 1심 판결내용에 대해 “양승태 적폐사단의 조직적 저항이자 보복”이라며 사실상 재판불복종을 선언했다. 촛불혁명이란 정당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정권이니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부정해도 괜찮다는 ‘독선’이자 ‘오만’에 다름 아니다. 집권당이 선례를 남긴 마당에 앞으로 일반 시민이나 단체가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1심 재판장을 맡았던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온갖 시비를 갖다 붙이는 등 재판부 흠집내기에도 여권이 총동원됐다. 사법 농단으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출신이고, 사법 농단 비리혐의로 조사받은 전력이 있다고 비판했는가 하면, 민변은 성 부장판사를 탄핵소추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성 부장판사가 박근혜 정부 당시 직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실세 장관을 구속시켰을 때 ‘용기 있는 판결’ ‘사법정의 실현’ 등의 찬사를 내놓은 것과 정반대다. 성 부장판사는 졸지에 적폐판사로 내몰렸고, 탄핵소추 대상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 정신과 사법부의 판결을 부정하고, ‘우리편’의 목소리만이 진실이라고 외치는 것이 ‘촛불정신’일까. 촛불민심은 과연 일개 판사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에 보복성 판결을 했다는 말을 믿을까.

긴 설 연휴가 끝나고 민주당은 다시 사법개혁의 고삐를 잡아당기고 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연휴 마지막인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설 민심 관련 간담회에서 “사법 농단 대책위에서 (법관탄핵 문제를)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법 농단 판사들이 아직도 법대에 앉아있으니 사법개혁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며 “사법개혁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은 “사법 농단에 대한 민주당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질책이 있었다”면서 “너무 점잖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에 앞으로 당이 더 분발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고)에서는 김 지사의 실형선고 및 법정구속에 대해 적절하다는 여론(46.3%)이 과도했다는 여론(36.4%)을 오차범위(95%신뢰구간에 ±4.4%)를 넘어 앞섰다. 여론조사만 놓고 볼 때는 민주당이 전한 설 민심과는 분명 괴리가 있다.

‘촛불정권’을 내세우려면 지난 정권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권출범 3년 차가 되도록 적폐 청산만 외친다고 촛불정권의 정당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집권 3년 차. 신적폐가 하나하나 터져나올 시점이다. 언제까지 ‘촛불민심’에 기댈 수 없을 것이란 점은 무엇보다 집권당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