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총탄에 생을 마감하거나 자기 몸을 던졌고, 감방 생활을 하지 않으면 국민 손에 하야해야 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란 영광을 빼고 나면 본인과 주변은 불행했다. 비리나 권력 남용으로 아들이나 형제 등은 감옥에 갔다.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을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법하다.

정치적 영향력이란 측면만 놓고 보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좀 행운아인 듯하다. 퇴임 후에도 상도동 자택에서 ‘사저 정치’로 영향력을 한동안 발휘했다. 2002년 3월.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대권 레이스에 막 돌입했을 무렵이었다. 그때 YS는 상도동 자택을 찾은 이 전 총재의 비서실장 김무성 의원에게 “이 사람이 누구더라. ○○○과 니는 배신자 아이가”라고 했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부산 출신인 노 전 대통령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이 전 총재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였다. 자신이 킹메이커란 사실을 각인시키려 한 것이다.

이후 YS는 정치적 고비마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때론 선문답으로 사실상 현실 정치를 했다. 하지만 훈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오히려 노욕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가 원했던 아들 현철 씨의 정치 입문이란 실익도 얻지 못했다. 그나마 개인 비리나 치부를 하지 않은 그였기에 실정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총칼로 권력을 뺏을 정도로 간(?)이 컸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은 고사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가야 했다. 수렴청정하려 했지만 권력을 물려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았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것이다. 문민정부 땐 전·노 전 대통령은 나란히 감옥을 가야 했다. 죽은 권력이 정치판에 기웃거리면 그 끝은 대부분 비극이었다.

요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로 ‘배박(배신한 친박)’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의 말을 빌려 자유한국당 당권에 도전한 황교안 전 총리가 배은망덕하다는 뉘앙스를 주는 말을 했다. 친박계의 대표주자로 비치는 황 전 총리가 화들짝 놀라 “(박 전 대통령에게) 도리를 다하고 있다”라고 한 것을 보면 메시지는 먹혀든 듯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서는 권력에 대한 진한 미련이 읽힌다. 권력은 고집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는 법. 인터넷에는 친박 비박 반박 복박 등이 무수히 많지만 결론은 ‘쪽박’이란 말이 떠돈다. ‘배박의 정치’ 끝이 예감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