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자기 표현의 기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14 19:23:19
  •  |  본지 3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한 권의 시집은 표현의 창고이다. 별처럼 빛나는, 신선한 표현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 대상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표현은 대상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그림 서상균
‘얼굴은 이 세상의 수많은 거울, / 얼의 / 동굴, // 얼이 빠진 면(面), // 얼의 조국, // 불이 꺼진 / 재 속에서 솟구치는 새, // 자막 없는 외국 영화, // 얼이 변장하고 / 나왔다가 홀연 사라지는 / 무대’.

이 시는 장석주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에 실린 ‘얼굴’이라는 제목의 시다.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얼굴은 얼이 태어나고, 살고, 숨는 곳이며, 자막이 없으면 대사의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 영화와 같아서 좀체 곧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멋진 표현들을 읽게 되면 내가 갖고 있는, 활용할 수 있는 어휘의 총량이 훨씬 늘어난 듯한 유쾌한 기분이 든다.

근래에 또 내가 크게 매력을 느꼈던 표현은 정지용 시인의 시 ‘비로봉’에서 쓴 시구이다. 정지용 시인은 ‘누뤼알이 참벌처럼 옮겨간다’라고 썼다. ‘누뤼’는 우박을 일컫고, ‘참벌’은 꿀벌을 뜻한다. 우박이 쏟아지는 현상을 참벌의 비행에 생생하게 빗댔다. 이렇게 빗댐으로써 우박은 활동하되, 참벌처럼 생명력이 있는 것으로 거듭나게 된다.

작고한 오규원 시인은 그의 시론의 글에서 모든 존재는 현상으로 자신을 말하고, 현상으로 자신을 말할 때 그 언어는 존재의 언어가 되어 그 존재를 증명하며, 만약 우리가 시간의 생성과 함께 일어나는 그 현상을 우리의 언어로 기록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언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고, 이 책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상은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특히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나 시조 에세이 소설 자서전 등을 직접 쓰고, 그 글쓰기의 방법을 보다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 모두는 자기 표현의 기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 표현에 대해 다소는 무관심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은 대체로 좋고 나쁨, 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을 표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시비(是非), 호오(好惡)와 관련된 말만을 짧게 단호하게 한 후에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정도로 말하는 것으로 자기의 의사를 남김없이 전부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이런 표현은 매우 과단성 있고 엄격해 보이지만 상대방에게는 무뚝뚝하고 매정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그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친절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떤 의견을 물을 때 “나는 그렇게 하는 것 싫어. 하고 싶지 않아”라고만 말하고 만다면 어떻게 될까. 정작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왜 하고 싶지 않은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상세하게 듣고 싶어 할 텐데 말이다. 우리는 보다 더 소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필요가 있고, 이렇게 볼 때 자기 표현의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는 아주 근사한 변화라고 하겠다.

우리는 자기 표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내 생각을 돌아볼 기회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언어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태어나고, 자기 표현이 옳고 그름이나 좋음과 싫음을 드러내는 것 이상을 표현하려고 할 때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보다 더 깊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그린북’을 보면서도 자기 표현의 기술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이 영화에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와 다혈질이며 주먹을 휘두르며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돈 셜리 박사가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날 때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토니 발레롱가를 채용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담았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 내부에 있었던 인종 차별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또 둘 사이에 쌓여가는 우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토니 발레롱가의 개인적 변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투어 기간 내내 토니 발레롱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아내에게 편지를 띄워 전달한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잘 있고,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고 간단하게 적어 편지를 보낸다. 그러다 돈 셜리 박사의 도움으로 편지의 내용은 보다 실감나는 연서에 가까워진다. 지금 자신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날씨는 어떠했는지 등을 쓰게 되고, 또 아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자세하게 적게 된다. 토니 발레롱가는 어느 날 아내를 향해 ‘당신은 나의 집, 예쁜 불이 켜져 있는 집이에요’라고 쓰는데, 이러한 우아하고 감각적인 표현에 이르는 일은 한 사람의 놀랄 만한 내적 변신으로 여겨졌고, 또 표현 자체로도 감동적이었다. 토니 발레롱가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언어들을 보기 시작했고, 그 언어들을 활용해 자신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것이었다.

‘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 내리는 가벼운 백색송이들로 이루어진 시. 하늘의 입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시이다. 그 시는 이름이 있다. 눈부신 흰빛의 이름, 눈’.

이 문장은 프랑스의 작가 막상스 페르민이 쓴 책 ‘눈’에 실려 있다. 겨울날에 내리는 눈을 이렇게 적으면, 우리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눈의 눈부신 흰빛과 눈이 내리는 하늘의 큰 공간을 문득 경험하게 되고, 또 우리가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보다 의미 있고, 우리가 멋진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는 우리가 호명해 주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 쌓여 있는 언어들을 보다 다양하게 사용해서 자신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또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표현의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요즘의 세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시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기업 창업주 2세 경영 전면 나서다
  2. 2‘지역 富 창출’ 연대경제서 해법 찾는다
  3. 3‘구 명칭 변경’ 주민 자발 서명이라더니…알고보니 강제 할당
  4. 4부산대 미술관 외벽 ‘와르르’…미화원 작업중 숨져
  5. 5황교안 측근 부산 4인 내년 총선 행보 촉각
  6. 6합리적 분양가·최적 입지 ‘송도쌍용 디오션’
  7. 7“무시하듯 쳐다봤다”…산책 50대女 폭행한 40대
  8. 8세계적 해양 인프라 갖춘 부산…성장동력·정책 제안한다
  9. 9“자갈치축제 접근성 이유로 구덕체육관서 하는 꼴”
  10. 10칸서 작고한 故 김지석 BIFF 수석프로그래머 산재사망 인정
  1. 1文 “5·18 맞아 광주시민께 너무 미안”
  2. 2광주 찾은 황교안, 시민들 항의 몸싸움
  3. 3정부, 개성 기업인 방북승인
  4. 4盧 서거 10주기 앞둔 부산, 추모열기
  5. 5문 대통령, 취임 3년 첫 靑비서관 인사
  6. 6트럼프 내달 하순 방한…동맹강화 논의
  7. 7"리비아 피랍 60대 315일 만에 석방"
  8. 8바른미래당, 투톱 손학규-오신환 정면충돌
  9. 9집권 3년차 첫 靑비서진 개편…'분위기' 쇄신·'성과' 도출 의지
  10. 10김현아 의원, ‘文 대통령 한센병’ 비유 결국 사과
  1. 1환율 1200원 코앞…수출 반등 호재냐, 원화 경쟁력 악재냐
  2. 2두산위브더제니스 하버시티, 북항재개발 수혜 ‘미니 신도시’…매축지마을 랜드마크 단지로 급부상
  3. 3 세무당국 주택취득자금 출처조사 강화
  4. 4힐스테이트 명륜 2차, 명륜 1호선 초역세권에 첨단 주거시설…‘힐스테이트 타운’이 선다
  5. 5미국, 자동차 관세 6개월 연기…추후 한국산은 면제 전망도
  6. 6동래 행복주택 내달 입주자 모집…모든 가구 에어컨·가스쿡탑 설치
  7. 7부산 제로페이 가맹점 1만 곳 목표로 뛴다
  8. 8내년 500조 넘는 ‘슈퍼예산’…정부, 적자에 빚잔치 우려
  9. 9제조·스마트기술 융합 국제기계전 22일 개막
  10. 10기아차, 부산에 국내 첫 전기차 전용 정비장 설치
  1. 1여경 ‘무능’ 논란에 풀영상 공개
  2. 22019 다이아몬드브리지 걷기 축제
  3. 3경찰간부 여성화장실 훔쳐보다 덜미
  4. 4조현병 남성 부산 편의점서 흉기 난동
  5. 5부산 분식집 여주인 살해 60대 검거
  6. 6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스파랜드서 불
  7. 7'아내 폭행치사' 유승현 전 의장 구속
  8. 8기상청 “전국날씨 비소식”
  9. 9전동 킥보드 11살 어린이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 검거
  10. 10대림동 여경 논란… “치안조무사” “무능” VS “무전 지원요청” “제압에 도움”
  1. 1권아솔 인스타에 쏟아지는 비판
  2. 2최동원 동상 밟고 사진 찍은 부산대 사과
  3. 3맨시티, FA컵 우승…트레블 달성
  4. 4김기태 KIA감독 자진 사퇴
  5. 5‘21골’ 호날두 VS ‘22골’ 자파타 대결
  6. 6빙속여제 이상화 SNS로 은퇴소감 전해
  7. 72019 여자 월드컵 나설 23인 확정
  8. 8‘창 VS 방패’ 잉글랜드·네덜란드 네이션스리그 준결승 나설 소집 명단 공개
  9. 9진민섭, 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 2위…5m20
  10. 10 도스 안요스 연패 탈출인가? 케빈 리 웰터급 티이틀 합류일까?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나는 느린 도시가 좋다
두 强기업의 즐거운 도시 실험
기고 [전체보기]
대체거래소 설립 논의, 시기상조 아닌가 /강병중
세계가 주목한 대만의 건보 개혁 /천스중(陳時中)
기자수첩 [전체보기]
‘공포마케팅’ 후속 조처 중요하다 /이승륜
꼼수 내놓기 급급한 코스트코 /박동필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진흙 속의 진주 국악
느린 호흡의 의미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네이버가 노리는 것 /정옥재
부산 과거에서 미래를 찾다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호프 회동
뉴트로 감성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익산 팸투어의 감흥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밀면과 부산의 여름
기장멸치식해와 엔초비
사설 [전체보기]
부울경 광역관광본부 실질적 성과 내는 게 중요하다
15개 대학 연구부정 의혹 특별감사서 낱낱이 밝혀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상대빈곤율 17.4%가 의미하는 것
행복, 복지국가, 그리고 비례대표제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누구나 독대를 꿈꾸는 명화
고난의 역사 견뎌낸 명화
이홍 칼럼 [전체보기]
파괴적 정쟁 역사의 데자뷔
기업인이 알아야 할, 여성들의 정보탐색법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지역균형발전은 시혜성 선물이 아니다
조현병 범죄 해법의 딜레마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젊음과 신록의 계절 5월
라일락의 계절 4월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숙취
호날두와 마데이라 와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비오는 날 친구를 기다리다
개 짖는 소리에 세상을 알다
  • 2019 다이아모든브리지 걷기축제
  • 낙동강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