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TV방송이 유엔아동구호기금, 유엔난민기구, 국경 없는 의사회, 옥스팜 그리고 굿네이버스와 같은 국제기구와 사회단체의 활동을 간단없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인지도가 높고 명망이 있는 인사들이 이들 단체를 통해 극단적인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지구인을 돕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맑은 물 한 모금 얻기도 어려운 빈곤국가 주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우리의 양식에 아릿한 떨림을 전한다. 상업주의에 함몰된 대중매체가 이러한 공익활동을 지속하는 모습은 매우 건강하고 감동적이다. 또한 치열한 경쟁과 이기적인 국가주의가 팽배한 국제 정세에 비춰 이러한 프로그램이 대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매우 건강하다.
UN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새천년 개발 목표’라는 야심찬 구상으로 21세기를 맞았다. UN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 구상은 평화와 인권, 자유와 평등, 단결과 관용이라고 하는 시대적 담론을 근거로 빈곤 문제를 인류 공동의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극심한 빈곤의 퇴치와 여성과 아동을 비롯한 사회적 취약 계층의 보호 특히 아프리카 최빈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UN회원국의 공동의 책임성을 강조했다. UN은 금세기 초 19억 명이 넘는 사람이 하루 1.25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수치를 조금 올려 2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그 수가 30억 명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이는 보편적인 인류애의 측면에서나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기초로 UN 새천년개발목표는 8가지의 주요 지표를 제시했다. 극빈과 기아의 퇴치, 보편적인 초등교육, 양성 평등과 여권 신장, 유아 사망률 감소, 모성 보건의 향상,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구제, 지속 가능한 환경의 보존, 개발을 위한 범세계적 파트너십 등이 그것이다. 이후 치열한 토론을 거쳐 극빈과 기아를 퇴치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15년간 지속됐다. 지역이나 지표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일부 요소는 세계인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새천년 개발 노력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하루 1.25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극빈자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계획은 2010년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기여도 적지 않았다. 2015년 우리의 대외원조 규모가 19억 달러를 넘겼는데 이는 국민총소득의 0.14% 수준에 이른다. 원조 규모나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세계 23위 수준이다. 아울러 개발원조가 국가정책의 주요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시 또한 2011년 ‘개발원조의 효율성에 관한 고위급 포럼’을 개최함으로써 존재감을 보였다.
절대빈곤의 극복 문제는 이제 새천년 개발 목표의 틀을 떠나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새로운 과제로 국면을 전환했다. 새천년 개발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는 대체로 후한 평가를 하고 있으나 사안의 성격에 비춰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극빈 상황의 극복은 중국 인도처럼 경제발전이 활발한 나라에서나 가능했으며 많은 국가가 그 혜택을 보는 데 실패했다. 결국 개발재원의 확보와 사회의 역동성이 문제였다. 새천년 개발목표의 논의 과정에서 개발재원을 확보하려는 후진국의 노력과 호소는 처절했다. UN은 선진국이 소득의 0.7%를 개발원조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빈곤국들은 개발원조 규모를 1%로 늘리라는 주장을 반복했고 그들의 호소는 의미 있는 결과로 연결되지 못했다. 보편적 논리인 인도주의적 주장이 국가우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오늘의 현실은 더욱 냉혹해 보인다. 세계경제의 팽창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각국은 국가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위축되는 모습이다. UN이 야심차게 구제를 약속했던 빈곤국과 그 주민들은 더욱 혹독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구호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와 기관 그리고 활동가들의 노력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전 부산시 국제관계대사·전 주요르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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