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마흔이 되었다. 앞자리가 바뀌는 일은 오랜만이라 아직 어색하다. 이런 식이다. 최근 설문조사를 했다. ‘귀하의 연령은’이라는 질문에 움찔하며 40대를 클릭했다. ‘2030세대’로 시작하는 기사를 읽다가 ‘이제 더는 내 얘기가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당황했다. ‘40대를 위한 추천!’따위의 광고 문구들은 역시나 낯설다. 한 선배는 ‘네가 벌써 마흔이라고. 내 나이만 먹는 줄 알았더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놀린 것 같다.

현재의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도 부쩍 많아졌다. 쓰지 못한 박사논문이 먼저 마음에 걸린다. 청년문화, 지역문화 등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논문을 써보겠다는 나름 당찬 포부를 가졌었는데, 내 인생에 작은 획조차 완결 짓지 못한 채 30대가 지나갔다. 하는 일도 슬슬 걱정이 든다. 30대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잘살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며 문화기획 분야에서 이것저것 일을 벌여왔다. 나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왔다고 생각은 하지만, 후배들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권할 만큼의 성취를 이룬 것 같지는 않다.

40세를 불혹이라 한다.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을 만큼 내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 것 같아 걱정도 된다. 마땅히 이룬 것도 없어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당혹감도 종종 느끼는 마흔의 시작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다지 두려움은 없다. 몇 해 전부터 마흔이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막상 되고 보니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불확실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어쩌면,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만약 아내가 이 글을 본다면 기가 찰 것 같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자기 긍정의 원인을 천천히 살펴보니 첫째는 역시 믿어주는 아내 덕분이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 덕분인 듯하다.

얼마 전 문화예술계 선배와 두 분과 술자리를 가졌다. 한 선배는 1인 기업으로 출발해 지역 토대의 출판사를 만들어가고 있고, 또 다른 선배는 교류와 상호 배움을 중심으로 관객 주체의 영화문화를 가꿔가고 있다. 둘 다 어른들이 권하지 않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들은 한 살 더 나이든 이야기부터 지금 계절에는 어떤 회를 먹어야 하는지, 작년에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올해 계획은 뭔지에 대해서 두런두런 잔을 주고받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다들 열정과 패기 넘치는 청년처럼 올해도 뭔가를 꿈꾸고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20, 30대와는 다르다. 그간의 경험 속에서 자기 의지를 쌓아두었기에, 하려는 일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고 현실적인 한계도 고려한 계획이었다.

주변 사람을 둘러보니, 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함께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인디 공연계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동료는 갑자기 어느 날 시의원에 도전했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안 될 것이라며 힘껏 말렸으나 그녀는 배짱 좋게 출마해 당선됐다. 예전보다 백 배는 더 애쓰며 지역문화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함께 회사를 창업해 올해 같이 마흔에 접어든 동료는 이제 좀 회사가 안정될 만하니까 갑자기 자신만의 새 길을 개척하겠다며 떠난다고 선언했다. 너는 또 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쉽지 않을 거라며 말렸으나, 결국 그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고 그동안 축적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마흔 중반의 예술가 커플은 전에 없던 예술적 실험과 시도들로 지역사회에 신선한 영감을 주고 있다. 시대 흐름을 잘 읽어 항상 반 발짝 앞서가던 문화기획자 선배는 지역에서 처음 시도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경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다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 속에 용기를 내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런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이런 이상하고 유쾌한 사람들 덕에 마흔 초입에 용기를 얻는다.

플랜비문화예술 협동조합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