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橘化爲枳)와 청출어람(靑出於藍). 음식의 교류사에서 이 두 고사성어는 매우 중요한 명제가 된다. 귤화위지는 기후와 풍토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기후와 풍토는 달리 말하면 시대와 환경.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음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정착하기 마련이다. 청출어람은 흔히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경우를 일컫는다. 음식의 역사를 보면 태어난 곳보다 이국땅에서 오히려 맹위를 떨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교류를 통해 확산되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음식에서 다문화주의는 조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본질인 셈이다.

베트남 느억맘 소스로 간을 한 김치찌개.

의심할 바 없는 한국음식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김치가 대표적이다. 김치의 원형은 채소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한 소금 절임에서 출발했다. 단순한 절임에 젖산발효와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러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일본을 통해 전래되고 북유럽이 원산지인 결구배추가 중국을 통해 전래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 원형이 우리것이고 오랜 세월 이 땅에서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김치를 통해 다문화주의를 체득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중소도시에서 주부들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베트남 중국 몽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시집 온 주부가 모였다. 낯선 땅에서의 시집살이가 녹록지 않음은 쉬 짐작할 수 있었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음식에 대한 향수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베트남 출신은 생선을 발효시킨 액젓인 ‘느억맘’을, 중국 출신은 녹두즙을 발효시킨 시큼한 녹두죽을, 몽골 출신은 삶은 양고기를 먹을 수 없어 힘들다고 했다. 그들 모두의 고충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고 베트남 출신 주부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줬다. 국과 찌개의 간을 할 때 베트남의 느억맘을 한 번 써보라고 했다. “어차피 마른멸치로 국물을 내는 것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방식이기에 느억맘을 써도 가족들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귀띔을 해줬다.

한참 지나 그 주부로부터 문자가 왔다. 김치찌개에 넣었더니 가족들이 너무 맛있어하고 자신은 고향 음식의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조언을 했던 나 스스로도 놀랐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전혀 새로운 김치찌개 조리법 하나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다문화주의는 다양성과 상대성을 근간으로 한다. 우리 세대가 음식에서 누리는 풍요는 결국 낯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음식은 민족과 국경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좀 서툴다고 배척하는 것은 촌스럽고 모순적이다. 세상사가 음식을 받아들이는 태도만큼만 관용적이면 충분히 평화로울 것이라 믿는다. 원래 음식인류에서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