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께 편의점에서 벌어진 사건이 연이어 보도됐다. 50대 남성이 진열된 상품을 흉기 삼아 점주를 협박하다 한 시민에 의해 경찰에 넘겨진 이른바 슈퍼캅 사건. 또 하나는 한 남성이 직원에게 담배 한 보루를 달라고 한 후 욕설로 협박하고는 그냥 도망치다 교통경찰에게 제압된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부산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 필자가 후배의 편의점 일을 돕다 보니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씁쓸한 뉴스들이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편의점은 우리 삶에 너무나도 가까이 와 있다. 버스 한 정거장 구간에 편의점 두세 개 발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올해부턴 80ｍ 간격으로 입점을 제한하는 자율규약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다. 이러다 보니 뉴스 속 사건사고 현장의 배경으로 편의점이 나오는 것도 이젠 익숙할 지경이다. 자본주의 현대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지경 같은 이 공간에 대한 논의는 넘치고 넘친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생겨버린 편의점을 탓하고, 누구는 최저임금의 잣대로서 편의점을 논하고, 혹자는 동네 상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먹는 편의점의 실상을 지적한다. 하지만 모든 논의에 앞서 편의점은 서민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을 거머쥔 1%의 인간들을 뺀다면 세상의 온갖 군상이 하루에 한 번쯤은 스치고 지나간다는 편의점. 그 속에는 사람과 치열하게 부대끼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이 존재한다.

이제 편의점 전선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카운터를 직접 살펴보자. ‘딸랑’하는 종소리가 울리면 문이 열린다. 손님 등장! 그의 시선, 옷매무새, 걸음걸이, 표정, 숨소리에 따라 긴장의 수위가 결정된다. 물건을 가져온 손님은 근무자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바로 여기서 몇 초간의 의사소통이 아주 중요하다. 평화협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균열이 조금이라도 일어난다면 협상은 이내 전투 버전으로 돌변한다.

“어제까지 원 플러스 원이었는데 하나 더 주세요” “복권은 왜 카드로 안 되나요” “담배도 빨리 못 찾고 뭐 하느냐” “단골한테 봉지 가격 20원을 꼭 받아야 하느냐” “바나나우유 저기 테이블로 갖고 와라” “나눠 마실 건데 종이컵 3개만 더 주소” “내가 어, 지금 어, 술 안 취했다고 어” 등등의 실랑이는 말 그대로 실랑이일 뿐 애교로 봐줄 만한 상황들이다.

앞서 언급했던 50대 남성처럼 흉기만 들지 않았지 그에 맞먹는 상황들은 필자도 수없이 겪어봤다. 그때 쏟아져 나왔던 악담과 욕설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한 지인은 어쩌다 한 달 정도 편의점을 도울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문을 여는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공간, 편의점 카운터. 그리고 생계와 학업, 그리고 미래의 꿈을 위해 그곳에 서 있을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들…. 문득 이 놈의 생활전선이 왜 이렇게 팍팍하기만 할까 하는 서글픈 생각에 한숨이 푸욱 새어나온다.

사실 편의점에 나쁜 마음을 먹고 들어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3 곱하기 6’과 강아지를 언급하며 싸우러 들어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편의점 근무자도 손님도 그러하긴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화가 나고 억울하기만 한 것일까. 나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다시 돌고 돌아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줄 것이라는 믿음…. 필자는 그런 순둥이 같은 상상을 하다 칼날 같은 현실을 떠올리곤 홀로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벅벅 긁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은 스치듯 들리는 편의점. 이제부터 그곳의 카운터에 있는 이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 보자. 돈을 던지지 말고 친절하게 건네 보자. “이거 없어? 이거 안 돼요?”라고 급하게 다그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도덕 교과서의 순이와 철이가 하는 소리라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딸랑!’하는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