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시구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의 주인공은 한나라 원제 때의 궁녀 왕소군이다. 그녀는 기원전 33년 한나라와 흉노 간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 흉노의 왕 호한야에게 시집갔다. 흉노의 땅은 현재의 내몽고다. 내몽고는 한반도 면적의 5배가 넘을 정도로 광활하지만 50% 이상이 모래와 잡석뿐인 불모지다. 그곳엔 황사의 발원지인 고비사막이 있어 해마다 봄이면 사나운 모래바람이 일어나 시야를 점령해버리니 봄 같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삭막함은 내몽고의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왕소군을 대하는 중국인의 이율배반적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원제는 화공이 절세의 미인 왕소군의 얼굴을 추하게 그리는 바람에 흉노 왕의 첩으로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왕소군을 화친의 제물로 삼아 불모지로 내몬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시인 두보는 이 일을 ‘한번 대궐 떠나니 북녘 사막으로 가서/푸른 무덤에 홀로 남아 황혼을 향하리라’고 읊었다. 그랬던 중국인이 지금은 “왕소군이 낳은 흉노의 후예는 중국인”이라며 몽골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는 방편으로 왕소군을 활용한다. 내몽고자치구의 성도인 호화호특시 남서쪽 6㎞ 지점에 있는 왕소군의 무덤은 높이가 180ｍ나 된다. 몽골족 포섭 정책의 흔적이다.

매년 이맘때면 ‘춘래불사춘’ 시구가 회자되긴 하나, 올해는 그 정감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한반도가 ‘잿빛 감옥’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절대 청정지대로 여겼던 대관령과 한라산이 미세먼지에 덮여 그 넉넉하고 웅장한 자태를 감춘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두 곳이 이러니 금강산과 백두산도 온전하리라고 어찌 장담할까. 미세먼지의 대공습이 한반도를 ‘흉노의 땅’으로 전락시킨 셈이다. 전 국민이 미세먼지 걱정에 사로잡혀 우울증을 앓을 지경이니, 왕소군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가히 ‘왕소군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왕소군이 한나라 조정을 원망했듯이, 중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원망도 커지고 있다.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최대 82%가 중국에서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상황이 악화되는 추세여서다. 중국 정부가 자국 미세먼지의 한국 유입 사실을 시인했다고 하나, 아직 개선대책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정부의 무기력이 국민을 왕소군으로 만들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