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나 경찰 주변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불문율(?)’이 ‘1도(逃) 2부(否) 3배(背)(또는 3빽)’다. 수사기관에서 부르면 우선은 달아나고(1도) 잡히면 부인하고(2부) 그래도 안 될 땐 연줄을 동원하라(3빽)는 의미다. 그러나 요즘엔 최우선으로 강조되는 게 ‘휴대전화부터 없애라’는 거란다.

수첩이나 일기는 가장 손쉬운 아날로그식 기억 저장법이다. 휴대전화나 녹음기같은 디지털 장비가 없던 시절은 물론이고 수기에 익숙한 세대에겐 특히 그렇다. 이 때문에 위·변조 흔적이 없는 한 수사나 재판의 유력한 증거물로 채택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결정적 증거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작성한 63권의 업무수첩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을 날짜별로 정리해뒀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었다. 최근엔 시인 고은의 만행을 폭로해 명예훼손 소송을 겪어야 했던 최영미 시인이 20여 년 전 성추행 목격담을 기록해뒀던 자신의 일기장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된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한 대가 메모장 일기장 수십 권의 기능을 대신한다. 통화와 문자내역, 카카오톡같은 SNS 대화, 음성파일, 금융거래 내역에 심지어 이동동선까지 담겨 있어 개인의 사생활 그 자체나 다름없다. 작년 말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대통령에게 보고되기도 전 언론에 먼저 공개된 사실을 문제삼은 청와대가 가장 먼저 확보에 나선 것이 담당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다. 민감한 업무를 다루는 기업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극비 행선지에선 전화기를 아예 끄기도 한다. 10년 전인 2009년 검찰의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및 분석 건수는 1000여건에 그쳤으나 2017년엔 1만1575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최근 클럽 ‘버닝썬’ 사태가 커지게 된 배경에도 휴대전화가 있다. 연예인 정준영이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한 것도, 이를 지인들과 공유한 카톡방의 대화록이 저장된 것도 모두 휴대전화였다. 경찰 고위직과의 유착 의혹도 거기서 불거졌다. 휴대전화가 스모킹 건이었던 셈이다. 3년 전 정준영 몰카 사건 때 경찰이 휴대전화를 최우선 확보하지 않은 사실을 놓고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첩이나 일기는 찢거나 불태우면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디지털 장비는 포렌식(증거분석) 기술에 힘입어 상당 부분 복구가 가능하다. 기억하고 싶은 걸 저장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쉽게 지우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범죄자의 발목을 잡는 세상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