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를 구별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다.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은 경제력이겠지만 사회기반시설 구축 정도나 국민 의식 수준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당연히 선진국 판단 기준에는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를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는지도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도 다른 국가에 뒤질 것이 별로 없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첨단 장비를 갖춘 까닭에 ‘날아다니는 응급실’이라 불리는 응급의료전용 헬기(닥터 헬기)와 같은 세부적 사안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닥터 헬기가 우리나라에서 본격 가동된 때는 2011년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도입 시기가 가장 늦다. 운행 대수도 7대뿐이며 배치 지역 역시 수도권·강원·경북·충남·전남·전북 등지 6곳에 불과하다. 1972년 닥터 헬기를 띄운 미국이 900여 대, 2001년 운항을 시작한 일본이 40여 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한국은 지형 특성상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곳이 적어 효율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내놨다. 연내에 닥터 헬기 1대를 추가 도입하는 한편 야간 운항도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전국 어디서나 닥터 헬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도록 지침을 고치기로 한 대목이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닥터 헬기는 사전에 지정된 전국의 ‘인계점’(착륙가능 지점) 787곳만 이용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응급 환자가 생겨도 인계점과 거리가 멀어 헬기 수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비행 안전을 위해 인계점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억척스럽게 고집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택가 한복판뿐 아니라 고속도로나 경기장, 공터에도 닥터 헬기가 착륙할 수 있어야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정부 방침에는 부산이 주목해야 할 부분도 있다. 정부가 공모를 통해 희망지역을 선정한 뒤 닥터 헬기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부산은 2015년 응급의료전용 헬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이라면 닥터 헬기 한 대쯤은 마땅히 있어야 할 터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