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해결은 법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입장을 달리 하는 이와 곤란한 문제로 맞닥뜨렸는데 자신만의 힘으로 처리하기 힘들거나 주변에서 사안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 소위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적 장치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해야 한다. 실제로 그간에도 많은 이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풀고자 법의 문을 두드려 왔으며, 종래에는 법적 처치가 그다지 시도되지 않았던 종류의 다양한 갈등이나 고통도 근래에는 법 앞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림 서상균

주목되는 것은 법적 판단의 과정이나 결과 등 전반을 둘러싼 의혹이나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기실 ‘법을 다루는 분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판단하겠지’라는 식의 기대는 그대로 지탱할 수 없게 된 정황이 실제로 드러난 때에도 법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들어주지 않아 마지막 방편으로 법을 찾은 경우도 있겠고, 법의 현장에서 겪게 될 고단함이 어떠하든, 맺힌 상처가 너무도 혹독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일 터인데,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법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물론 이런저런 연유로 그렇게 법에 호소해 오는 이에게 마땅히 법은 응답해야 한다. 전형적인 법적 사건이 아니라서 난감하더라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려고 애써야 하고, 통상적인 사안에 비해 상당히 난해하더라도 더 많은 깊은 고민과 노력을 불어넣어야 하며, 이른바 승산이 없어 보이더라도 법으로 다룰 요건이 충족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진행해 봐야 한다.

그처럼 법이 할 바를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법의 임무이거늘, 법은 언제나 정당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쉽지도 않다. 이쪽저쪽을 골고루 본다고 천명하지만 이는 늘 부족함이 지적되는 지점이며,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정성은 ‘그렇게 하겠노라’는 다짐으로 바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이나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까지 법이 간과하지 않고 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은 어쩌면 야무진 꿈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법이 최선을 다해 돕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거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의도와 태도 및 결과 모두 바람직한 것이었더라도 법을 거치는 과정은 녹록지 않고 그 여파 역시 상당함은 많이들 아는 바이다. 누가 잘못했는지 아닌지 다투어 이긴다 한들 너덜너덜하게 해진 내면이 아무는 것은 아니다. 책임 소재를 추궁하여 힘겹게 가려냈더라도 시간이 흘러가 버려 실효성이 없는 관계로 허탈해지는 예도 허다하다.

한편, 공식적인 답변으로 위안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법은 실은 문제가 된 일을 제대로 들여다봤건 그에 미치지 못했건 간에 논의 자체를 종식시킴으로써 관련되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의 역량을 오히려 감퇴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법에 막연하게 기대기보다는 세상 자체가 더 괜찮아지도록 해야 한다. 더러,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기는 하되 세상의 작동과 자신의 삶을 별개로 여기고, 그로 인해 완고한 세상으로부터 상처입거나 쉽게 세상 탓을 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흔히 잘 인식하진 못하지만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나 더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고 그리 지내며 서로 다른 이들을 동등한 존재로 대우함으로써 세상 자체를 더 괜찮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법이 돕는지 여부 및 그 도움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여부에 관계없이, 각자가 그리고 우리가 고유한 자신다우면서도 공통의 삶을 도모하고 그 과정을 언제나 새롭게 엮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법 역시 더 괜찮게 자연히 달라질 것인 바, 그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