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미국 오하이오주의 Y대학 관계자가 그 대학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필자의 소속 대학을 찾았다. 필자는 당시 대외협력처장으로서 국제교류와 발전기금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Y대학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가격 대비 교육내용이 풍부해 소위 가성비가 높았다. 그 대학 관계자는 새로 선출된 총장이 파격적 조건을 제시해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키우려 한다고 했다.

필자가 국제교류 외에 발전기금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다 보니 자연히 대화는 발전기금 쪽으로 흘러갔다. 필자는 Y대학이 지방의 중소 규모 대학이다 보니 당연히 재정적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 하는 추측으로 얘기를 풀어 갔는데, Y대학 관계자는 오히려 필자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Y대학이 있는 지역의 고등학생들 중 대학 교육을 원하는 대부분이 Y대학으로 진학하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상당수라고 했다. 성적이 조금만 괜찮으면 무조건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우리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서 Y대학 졸업생 대부분이 그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동문회도 운영되고 모교에 애정이 커 발전기금도 원활하게 조성돼 재정적 문제는 없다고 했다. 새 총장이 가격 할인 등을 통해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키우려는 목적은 단순한 언어교육 장사가 아니라 Y대학 동문의 해외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라 설명했다.

Y대학 관계자와의 대화는 필자의 기억 속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려고 했고, 9월 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연설에서 추가 공공기관 이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1월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신청한 총 32개 사업 중 23개 사업을 예타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일부 수도권 접경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지방의 사업으로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균형발전의 씨앗을 다시 뿌려 지방분권이라는 열매를 맺고자 하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Y대학의 활발한 동문회가 다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균형발전은 자원의 고른 배분, 즉 돈을 골고루 나눠 주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총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으로 흘러가는 돈을 수도권 주민이 곱게 볼 리 없다. “사람도 살지 않는 맨땅에 돈을 왜 뿌린대?”가 수도권 주민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지방분권도 쉽지 않다. 헌법 조문만 바꾼다고 분권이 되지는 않는다. 지방의 주민들이 분권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역에 애착을 갖고 지역의 주인이라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미국 Y대학의 동문회가 그렇게 잘되는 이유는 이 대학이 있는 지역은 미국 내에서 어느 지역보다도 ‘Local First(지역 우선)’운동이 활발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로컬은 지리상 구역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로컬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곳에 사는 이웃과 그들의 사업 및 여가활용을 총칭하는 것이다. 로컬이야말로 그곳에 토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갖 기회가 부여되는 공동체(community)가 돼야 한다. 부산 젊은이들은 왜 수도권으로 가려 하는가. 부산에는 없는 기회가 수도권에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컬 퍼스트 운동은 지역순환경제라는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지역순환경제를 기반으로 가능하다. 지역순환경제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 외부로 유출되는 지역의 부(富)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지역앵커기업, 즉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순환경제를 주도할 기업들을 육성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참여정부 때 이전한 1차 공공기관들도 지역앵커기관으로서 지역순환경제를 지탱하는 주춧돌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 젊은이들이 자신만만하게 부산 경제의 구성원으로서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