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사에서 진달래꽃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년) 때 지어진 ‘헌화가(獻花歌)’다. ‘짙붉은 바위 가에/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순정공(純貞公)의 부인 수로(水路)는 강릉 바닷가의 천 길 벼랑에 활짝 핀 진달래꽃을 보곤 꺾어달라고 했다. 시종들이 모두 위험하다고 거절했는데, 소를 끌고 가던 한 늙은이가 그 말을 듣고 꽃을 꺾어와선 꽃과 함께 이 가사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신화적 해석이 이뤄지고 있지만, 분명한 건 수로부인의 모습이 늙은이가 목숨을 걸고 벼랑에 오를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한 떨기 진달래꽃처럼.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은 별명에서도 드러난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참꽃(꽃 중의 꽃)’이라 했을까.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중국 촉나라 망제(望帝)의 넋이라는 두견새가 밤새 울면서 토한 피로 붉게 물들여진 꽃이 진달래꽃이라는 전설이 한 예다. ‘두견 울음 그친 새벽이면 산마루 달은 희미하고/피눈물진 골짜기엔 떨어진 꽃잎 붉게 물들었구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쫓겨난 단종은 불면의 밤을 보낸 뒤 새벽녘 이슬 젖은 진홍빛 진달래꽃에서 자신의 쓰린 상처를 목격하곤 했다. 고려 전기의 시인 정지상은 두견새의 울음소리와 진달래꽃을 ‘재촉하는 소리가 산대나무 쪼개는 듯하고/들꽃은 피로 물든 것처럼 붉어졌구나’라고 읊기도 했다.

그런 기억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진달래꽃은 올해도 천연덕스럽게 피었다. 개화는 기습적이라더니,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가 그랬다. 주말인 지난 23일 부산 금정산은 한 주 못 본 사이 ‘진달래 유격대’의 점령지로 변해 있었다. 산비탈에 흐드러진 진달래꽃 위로 봄볕이 쏟아져 분홍빛 사태가 난 것 같았다. 금정산뿐 아니라 진달래는 남부지방 대부분의 산지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진달래는 북진에 나섰다. 두 주가량 지나면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에 이르고, 다음 달 말이면 백두산 정상에 도달할 듯하다는 소식이다. 한반도가 ‘진달래 산천’으로 통일될 날이 멀지 않은 셈이다. ‘한반도의 봄’이다.

하지만 그 봄은 자연의 봄일 뿐, 정치의 봄은 아니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는 등 정치는 오히려 겨울로 후퇴하는 형국이다. 그럴수록 안타까운 마음은 진달래꽃처럼 붉어진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