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의대생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얼마나 잘했을까요? 첫 시험 성적과 친구 한 명이 떠오르네요. 당시 저와 마찬가지로 공부의 어려움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고 시험까지 아주 못 친 영진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영진이에게 성적을 묻자 성격 좋은 영진이는 자기가 육십 몇 점이라고 쿨하게 말해주더군요. 그랬더니 “그럼 우리 반 꼴찌는 영진이네? 하하 호호” 하면서 영진이를 포함해 다들 즐거운 분위기에서 첫 시험 꼴찌가 비공식적으로 정해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 제 점수가 영진이보다 10점이나 낮았다는 것이고, 고로 우리 반 꼴찌는, 짜잔, 바로 저였습니다. 90점대가 수두룩한 시험에서 50점대의 점수를 받은 제가 진짜 우리 반 꼴찌였고, 친구들의 성적 얘기를 듣고 있던 저는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콸콸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졸업할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을까요?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의 수업과 친구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학교 수업과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학교 수업을 듣지 않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듣지 않으니 교과서를 볼 일도 없었고 이를 중심으로 한 예습복습도 당연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을까요? 공부로 어려움을 겪던 저에게 친구들이 인터넷 강의를 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줬고, 저는 제 수준에 맞는 인터넷 강의를 찾아서 한 단계 한 단계 저만의 속도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습시간에 강의를 들었고, 학교 수업 시간엔 그 강의의 복습을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께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만, 아는 게 없어서 들어도 이해되는 게 없는 수업을 제가 과연 계속 들어야 했을까요? 저는 한 단계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시험을 쳐버리더니, 휙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수업을 듣게 한 건, 저로서는 정말이지 경 읽는 스님 앞에 선 한 마리 소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콧구멍이나 벌름거리며 말이죠. 어쨌든 이러한 수업, 시험, 그리고 학생 개인이 학습하는 속도의 불일치는, 세계적인 교육자 살만 칸처럼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이 빗대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밥을 짓는 걸 가르친다고 해봅시다. 먼저 쌀을 씻는 법을 가르쳐주고 1분의 시간을 준 뒤 쌀 씻기 시험을 칩니다. 학생이 잘하지 못하면 “57점! 5등급!”하고 성적표를 줍니다. 그러고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그 쌀을 밥솥에 넣더니 “이제 밥을 해먹어볼까요?”라며 밥 짓는 단계로 넘어가 버립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교육이 전국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완전학습모형, 다시 말해 학습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그 전 단계를 완전히 익히도록 하는 교육 전략이 학계에 발표된 지 50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수많은 교육 연구자들이 완전학습의 성공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덜 씻긴 쌀로 지은 텁텁한 밥을 먹어봐야 합니다.

더군다나 1인당 네트워크 연결 기기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인터넷 강의 또한 어마어마하게 발달한 21세기 한국은 교육 혁신을 위한 인프라가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넘칩니다.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의 강의는 영상이 대체할 수 있고 학생들은 자기 속도에 맞게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강의의 압박에서 벗어난 교사들은 스포츠팀 코치처럼 학생들의 문제 풀이나 시험공부를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창작이나 실험 설계 같은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활동까지 도와줄 수 있습니다. 교육은 이렇게 뒤집혀야 합니다.

아참, 저와 제 친구는 어떻게 됐냐고요? 각자의 속도와 방식을 따라 잘 공부해서 학교 수업도 따라잡고 어느 부분에서는 학교 커리큘럼을 추월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첫 시험 점수로는 상상도 못할 대학에 와서 즐겁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동아대 의학과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