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오면 떠오르는 시구가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이 지은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그는 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봄이 시작되는 4월은 부활의 계절인데,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을 치른 당시 현실은 부활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황폐했기에 그리 생각했다는 게 통설이다. 부활할 수 없는 봄은 희망고문처럼 잔인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엘리엇이 이 시의 제사(題詞)에서 무녀의 입을 빌려 “죽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그런데 엘리엇은 이 시를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불평”이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영문학자 제임스 밀러는 ‘T. S. 엘리엇의 개인적 황무지’라는 책에서 엘리엇이 4월을 가장 잔인하게 여긴 까닭을 1910년 프랑스 유학 시절 만난 장 베르드날이란 의대생을 잃은 슬픔이라고 했다. 엘리엇이 사랑한 베르드날은 1차 세계대전 때 해군으로 참전했다가 1915년 4월 갈리폴리 해전에서 전사했다. 큰 충격을 받은 엘리엇은 그해 7월 비비언 헤이우드와 쫓기듯 결혼했지만 생활은 불행했다. 1921년 요양차 들른 스위스 로잔 호숫가에서 엘리엇은 이 시를 썼다.

밀러의 주장처럼 엘리엇이 4월을 가장 잔인하다고 한 이유가 개인적인 상실감에 있다고 해도, 그 감정은 황무지 같았던 전후의 시대정서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를 이룬다. 엘리엇의 시론(詩論)에서도 그 상관성을 볼 수 있다. 그는 “예술 형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물’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개인 감정을 예술로 승화하려면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대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구현의 궁극은 평화다. 엘리엇은 ‘샨티(Shantih) 샨티 샨티’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이 시를 마무리했다. 우파니샤드의 형식적 결어인 이 말은 ‘이해를 초월한 평화’를 의미한다. 부활에 대한 염원이다. 엘리엇은 이를 ‘잠든 뿌리를 깨우는 봄비’라고 했다.

4월은 우리에게도 잔인하다. 1만4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48년 제주4·3민중항쟁, 304명의 승객이 희생된 2014년 4·16세월호 참사 등등. 4월에는 유난히 아픈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마저 심각한 위기에 빠진 마당이니 올 4월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4월의 한반도에 부활의 봄비가 흠뻑 내리길 기원하며 엘리엇처럼 외친다. 샨티! 샨티! 샨티!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