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했던 겨울이 물러서자 흙이랑이 보풀거리기 시작했다. 그 풀썩거림 사이로 연둣빛 어린 순들이 고개를 내밀자 꽃들도 질세라 피기 시작했다. 그 꽃들은 힘이 세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지금 19번 국도 섬진강가는 차량으로 만원이다. 그 꽃길을 따라 몰려든 사람들은 다시 그 꽃길을 되짚어 내려가거나 올라가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섬진강이나 벚나무 아래에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또 어떤 웃음을 짓고 갔는지 그들의 일이라 알 턱이 없다. 하나 숨 가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한숨과 원망을 잠시 내려놓고 떠났길 빌어본다.

그러나 어디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였던가. 그들이 복귀하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잔다는 일상 외에도 온갖 언설이 난무하는, 말과 말이 부딪혀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말의 지옥일 터인데. 그 말 중에서는 정리되거나 사실에 입각하거나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만을 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말의 홍수 속에서도 오로지 먹고 입고 자야만 또 내일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대다수의 국민은 허탈해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절망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말이나 활자에 분통해하고 원망하며 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비판의 대열에 앞장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잘 입고, 얼마나 잘 먹고, 또 얼마나 잘 자려고 몇 채씩의 주택을 보유하고, 얼마나 많이 벌기 위해 위장 전입도 서슴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서울의 무주택 비율은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다는데, 이 정부에서 장관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왜 그리 집을 많이 갖고 계신지.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 작성, 차명분양권 전매 등의 기존 부적격 사유는 물론 국가연구비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거나 아들의 유학비용 지원 등의 철면피한 부류도 있다니, 도저히 이 정부에서 추천된 장관 후보자들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만약 이들이 ‘염치’를 알았다면 스스로 사양했을 터인데, 스스로를 염치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만 것이라 안쓰럽다.

20여 년 전 내가 큰 작가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맨 처음 배운 것이 염치다. 사전에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적혀 있다. 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에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배웠다.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사람이 아무리 잘 나도 지리산에 박혀 있는 돌멩이 하나만도 못하다’며 인간의 근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도리 대로 살아오지 못한 장관 후보자들의 염치 없음과 이들을 추천한 자의 안목 없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덜 가진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엔 수많은 국민의 마음을 쓰다듬을 만한 인재가 그리도 귀한가. 많이 배운 사람, 오래된 관료나 정치인 말고 산속이나 강가, 더러는 바닷가에 우거한 채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런 인재는 어디 없는가. 참으로 안쓰러운 인사 참사의 연속이다. 장관 후보자들 청문회를 보다 보면 어찌 그리도 전 정부와 닮았는지, 이 정부에서 추천된 후보들이 맞는지 내 귀를 의심하고 활자를 의심하다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마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짚지 못한 막무가내식 후보자 추천은 큰 홍역을 치르고서야 한 사람의 자진사퇴와 한 사람의 지명 철회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은 섭섭하다. 섭섭하니 괘씸한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에게 압승을 몰아준 이 지역의 민심 이반이 심상찮다. 이 정부에 실망한 민심이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넘실대고 있다. 이러한 부울경의 민심을 정부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때 이 정부를 뜨겁게 지지했던 수많은 국민이 더 등을 돌리기 전에 지난 정책들의 과오나 인사 참사로 인한 실책 등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말한 취임사를 실천하면 좋을 텐데.

우리 국민의 정서와 눈높이를 깊이 고민하고, 오로지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국민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정부, 정의로운 정부로 재탄생할 것을 주문해본다.

이병주문학관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