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썩 좋지 않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부침을 거듭해왔지만, 최근의 냉각기류는 언제 다시 풀릴 수 있을지 안갯속이다. 일본과 지근거리에 있는 우리 부산으로서도 양국 간 냉각기류로 여러 협력 사업이 순탄치 않은 실정이다. 부산시와 후쿠오카시가 201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초광역경제권 형성 협력사업’이 그 한 예다. 당장 올해 후쿠오카에서 열리기로 돼 있는 부산·후쿠오카 포럼 등 행사가 기본계획 수립 단계에서 표류하고 있다. 일본 측이 준비하는 회의인 만큼 개최 계획과 논의 의제 등을 우리 측에 알려서 협의해야 함에도 아직 특별한 진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지난달 중순 규슈의 대표적 도시인 후쿠오카와 기타큐슈에 출장을 다녀왔다. 2000년대 초, KOTRA의 후쿠오카 무역관장으로 근무했을 당시, 후쿠오카 앞바다 매립지인 아일랜드 시티에 부산시 주도로 한국정원이 생겼다. 2004년 완공된 이 공원은 후쿠오카시가 우호협력관계인 6개 도시와 협력해 각국의 전통적인 건축 및 조형물 등을 정원과 함께 배치하여 만들었다.
특히 한국정원은 한국의 장인들과 건축자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본 기술자가 일본의 자재로 만든 다른 도시 정원과는 달랐다. 그러나 15년 후 방문한 한국정원은 형편없었다. 다른 공원들이 비교적 원형을 보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정원은 양 옆의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여 동네 작은 공원으로 전락해 있었고, 훼손된 담장과 한국정원의 혼을 지키던 솟대 등 일부 장치물도 보이지 않았고 인적도 뜸했다. 한일 간의 냉기류가 이런 건축물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하지만 귀국 길에서는 “경제와 민간 교류에 관한 한 한일 관계는 전향적인 발전 가능성이 그대로 잠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후지나가 켄이치 후쿠오카 상공회의소 회장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 환영 입장을 표명하는 등 업계 대표들은 한결같이 한일 우호 협력을 재시동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우리 부산의 행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전면에 나서서 경제 교류와 민간 협력을 재점화할 경우, 규슈와 한반도 동남권을 잇는 초광역경제권 형성 논의는 다시 군불을 지필 수 있다.
구체적으로 3가지 방향에서 협력의 틀을 짤 필요가 있다. 먼저, 부산의 벤처 및 스타트업이 규슈 기업과 상호 협력하는 방안이다. 사물인터넷, 로봇, 해양자원 개발, 수소차 및 전기차 등 공통 관심 산업에서의 부품 및 소재 분야 협력 등 초광역경제권 개념으로 한국 동남권과 규슈가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글로벌 밸류체인 (GVC)의 중핵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둘째, 일본은 초고령 사회에 이미 진입했고 저출산 문제도 심각한 상황인데, IT 분야의 경우 2020년 36만9000명, 2030년에 최대 78만9000명의 일손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구인난이 심각하다. 부산이 일본취업 IT 인력 양성센터로서 일본 내 수요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해, 부산의 청년실업 해소와 일본의 고용난 해소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부산-규슈 기업 간 협력을 통해 글로벌 차원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을 추진해 볼 만하다.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북방도시교류협의회 채널에도 후쿠오카, 기타큐슈시 등을 적극 끌어들여 극동시베리아 수산업 공동 진출, 동해안 복합물류 네트워크 추진 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환동해권 크루즈관광에 규슈지역이 참가할 경우 러시아, 한국 관광객의 규슈 방문을 확산시킬 수도 있어 규슈 측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우리로서도 일본 관광객을 부산-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진 크루즈 노선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관계는 최근 냉각 상태지만, 경제나 민간 교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유명 K-팝 가수들의 일본 공연 티켓이 몇 시간 만에 매진되고 한국 관광객이 무려 750만 명이나 일본을 방문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한일 간 정치 외교적 위기상황인 지금이야말로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 세대 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고 도시 협력을 넘어 글로벌 무대로 협력을 확산시키는 시동을 걸 시점이다.
부산경제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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