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동진 칼럼] 두 强기업의 즐거운 도시 실험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4 19:52:35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경북 의성에 ‘성광성냥’이란 공장이 있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냥공장이다. 한두 동의 작은 공장이 아니라 성냥제조의 모든 공정과 기계시설이 남아 있고 규모 또한 10여 동이 넘는 대단한 곳이다. 그 공장이 2013년 문을 닫았다. 수요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점차 잊히던 성광성냥이 2016년 10월 어느 날 지역언론에 이렇게 등장했다.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인 ‘성광성냥’의 손진국 대표가 14억여 원 상당의 공장 부지를 지자체에 기부하겠다.’
손 대표는 항상 성광성냥을 후대에 유산이자 교육현장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꿈의 실천이 본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평생 함께했던 공장건물과 기계시설, 그리고 부지까지 기부하는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성광성냥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애착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고위층과 기업주 등 가진 자가 자신의 재산 일부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태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희생과 솔선수범하는 도덕적 책임 또는 의무’로 정의된다. 국내에서도 경주의 최부잣집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얘기할 수 있는 예가 많다. 보이지 않게 행해진 선행까지 합친다면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 속에서, 우리 삶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시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드러지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대기업의 기부를 통해 공공건물을 짓거나 큰 공원을 만드는 정도다. 그나마 순수성을 잃거나 대가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단순한 기부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철저하게 공익을 추구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개발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가진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증하며, 미래인 육성이나 기술 전수를 위해 사람을 키우고, 그리고 디자인 지원이나 컨설팅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행태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역에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아니 걸어가려 노력하는 두 기업이 있다. 강선(鋼線)을 만드는 기업은 ‘F1963’이라는 이름으로, 어묵을 만드는 기업은 ‘삼진이음’이란 이름으로, 다른 듯 같은 길을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

먼저, F1963에서의 63은 해당기업의 공장이 건립된 해인 1963년을 뜻한다. 이 공장은 45년 동안 철 와이어를 생산하다 2008년에 문을 닫았다. 유휴(遊休)공간으로 8여 년을 보낸 후, 기능이 정지된 폐산업 시설이었던 이곳이 지역의 신문화를 리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다중(多衆)이 머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변신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는 모든 계층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으며, 음악과 미술은 물론 공연과 책읽기까지 섭렵할 수 있다. 커피와 막걸리가 공존하며, 공장의 녹슨 기둥들과 거친 콘크리트, 그리고 숲과 풀들이 묘하게 조화된다. 처음에는 선뜻 다가서기에 어색했지만 이제 시민은 낯설지 않은 문화 체험의 순간들을 그곳에서 즐기고 있다.

삼진이음은 어떤가. 이음은 말 그대로 ‘잇다’, 즉 지역의 노포(老鋪)에서 전해지는 재래식 가공기술을 단절시키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승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대통전수방(大通傳受房)이란 재밌는 이름을 앞세우고 어묵, 두부, 칼, 고구마, 국수, 양복 등을 생산하는 지역 노포의 장인기술을 청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는 70개소 이상의 셀러와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M마켓이라는 지역 시장을 열고 있다. 1년에 서너 번, 봉래동 바닷가와 오래된 물류창고들은 그동안 전혀 상상치 못했던 지역 감성이 흘러넘치는 특별한 장터로 변신하곤 한다. 삼진이음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빈집 8곳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창업플랫폼으로 삼는 도전이다. 빈집들에 채워질 청년들의 활력은 상상만으로도 미소짓게 한다.
필자가 두 기업의 원래 의도와 달리 조금 과장되게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유사 기업들이 하지 못했던 길을 걸으려 하는 경영철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유행하는 지역재생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 시대로 나아가며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크진 않지만 강한 기업들의 새롭게 돈 쓰는 방식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두 기업의 사례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잠자던 시민을 깨워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공여와 지역의 신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은 물론 관(행정)과 공익재단, 지역주민의 협업을 기초로 하는 점이다. 셋째는 낡아 외면 받는 것 속에서 보석을 캐고, 약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 속에서 진주를 엮어내는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무기로 한다는 것이다.

글을 적는 이 순간, 필자는 부산에 대(大)기업이 없다는 오래된 불평과 낡은 생각을 버리려 한다. 엄청난 두 강(强)기업이 부산을 새롭게 가꿔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그들의 행보는 분명 또 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낳게할 것으로 믿는다. 성경의 한 구절이기도 하며,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에 나오는 “To whom much is given, much will be required”라는 말이 떠오른다. 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이에 대한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기업의 행보는 가난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르네상스시대 걸작들의 탄생과 개혁의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가(Medici family)가 걸었던 길이 될지 모른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 그런 꿈을 가져보고 싶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어떤 영양분을 어떻게 공급 받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는 달라진다. 그러나 빠른 성장보다는 느리지만 알찬 성장, 비대한 성장보다는 건강한 성장이 도시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성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주체의 공감과 공유 속에서 이뤄진다면 금상첨화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마늘’로 만든 춤, 인도네시아 간다
  2. 2출발 좋은 K7프리미어…사전계약 8000대 돌파
  3. 3아! 1타 차…박성현 아쉬운 메이저 준우승
  4. 4부산 유일 최우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 선정
  5. 5우정노조 총파업 투표 가결 여부 25일 판가름
  6. 6매직 갈라쇼부터 버스킹까지…세계 정상 마술사들 부산 달군다
  7. 7번호표 거래·가짜 수표 등장…“미계약분 분양 제도 개선을”
  8. 8학교 비정규직 내달 총파업 땐 학생에 빵·우유 제공
  9. 96월 모평 결과 나왔다, 이젠 유사 학과 분석해 합격 가능성 높여야
  10. 10말도, 탈도 많은 북구 명칭 변경…서명에 아파트 경비원까지 동원
  1. 1한국당, '국회 정상화 합의안' 추인 불발
  2. 26월 국회, '반쪽' 정상화…이달 내 추경처리는 사실상 무산
  3. 3‘세월호 유가족 징하게 해쳐먹는다’…차명진 의원 과거 막말 보니
  4. 4여야, 국회 정상화 전격 합의…80일 만에 정상 가동
  5. 5폼페이오, 북미협상 곧 재개 시사 "아주 진정한 가능성"
  6. 6김영춘 의원, 네이버의 지역언론 차별 해결책 요구
  7. 7"트럼프, 방한기간 DMZ 방문 검토 중"…북핵관련 메시지 주목
  8. 8여야대표 국회 정상화 합의 국회 80일만에 정상 가동
  9. 9“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 적법성 중요” 당내서 부쩍 제 목소리 내는 김해영
  10. 10한국당, 삼척항 찾아 안보공세 강화
  1. 1출발 좋은 K7프리미어…사전계약 8000대 돌파
  2. 2번호표 거래·가짜 수표 등장…“미계약분 분양 제도 개선을”
  3. 3부산지역 관용차량 르노삼성차 사주기 전개
  4. 4UAE 한국형 원전 정비사업, 국내업체 ‘반쪽수주’
  5. 5“대기업 편법출점 골목상권 잠식…국회 뭐하나”
  6. 6부산해양수산발전포럼, 25일 한국해대서 열려
  7. 7어업재해율, 다른 산업의 최대 12배…‘30세 미만’ 사고는 평균의 3배 육박
  8. 8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작년에도 세계 6위 그쳐
  9. 9거창 흉물 미완의 숙박시설…공공임대주택 추진
  10. 10내년 강력 해양환경 규제…저유황유 확보 비상
  1. 1“피트니스 모델 류세비 아닌 뮤지컬배우 박혜민…” 오보에 질책 잇따라
  2. 2부산역 3층서 투신한 일본인 사업가 숨져… ‘51억 추징금’ 신변 비관 추정
  3. 3권성동 1심 선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앞선 구속영장 기각 이유는?
  4. 4음주운전 처벌기준 25일부터 어떻게 강화되나, 벌금 최대 ‘2000만 원’
  5. 5감만2동 우암로 잇는 도로 27년만에 첫삽 뜬다
  6. 6음주운전 처벌기준 강화 ‘58년 만’… 최대 무기징역 구형, 면허 정지·취소 기준
  7. 7싸이 참고인 조사 양현석 전 대표 조만간 소환 조사
  8. 8술취한 40대 여성 8층서 창밖 내다보다가 추락사
  9. 92호선 지연 운행… “실검에 2호선 있는거 보니” “반대편 3번, 여긴 0번” 분통
  10. 10‘IMF 촉매’ 한보그룹 정태수 사망설 진실은… 아들 정한근 국내송환 ‘답은 곧’
  1. 1조지나 로드리게스 호날두와 함께한 휴가 “아모레 미오”
  2. 2부산 유일의 남자프로골프단 우성종합건설, KPGA 투어 개최
  3. 32019 코파아메리카, 아르헨티나-카타르전 메시 출격... 전반 1-0 종료
  4. 4부산 연고 첫 여자프로농구단 BNK썸농구단 창단
  5. 5정찬성 7개월 만의 재기… 58초 TKO 승리 ‘좀비처럼 부활’
  6. 6이동국, 얼굴로 받아낸 뜻밖의 ‘득점 찬스’ ... 개인 통산 최다골 219호골
  7. 7김진우 롯데 자이언츠 통한 국내 재기 불발… “입단 테스트 불합격”
  8. 8박성현 1타 제치고 생애 첫 LPGA 우승한 한나 그린은 누구?
  9. 9아! 1타 차…박성현 아쉬운 메이저 준우승
  10. 10'맹추격' 박성현, 아쉬운 1타 차 2위…우승은 그린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나는 느린 도시가 좋다
기고 [전체보기]
‘국가균형발전 2.0’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종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소주 한 잔도 단속대상 /류해국
기자수첩 [전체보기]
회동수원지 오염만은 막아야 /신심범
어린이집 종일반 의무화의 이면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나이 듦의 미덕’이라는 어려운 과제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국악, 월드뮤직을 꿈꾸며
진흙 속의 진주 국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예술이란 이름으로 /정홍주
장애학생은 어디로 가야 하나 /최영지
도청도설 [전체보기]
논란의 스펙
BTS와 이우환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낭독의 문화
익산 팸투어의 감흥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영혼 적셔주는 시락국 한 그릇
우동, 일본은 면발 한국은 국물 중시
사설 [전체보기]
소규모 공장 밀집 서부산권 미세먼지 규제책 세워야
14년째 동결 절단장애인 보장구 보조금 불합리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년, 노인 연령 기준 그리고 노인 복지
상대빈곤율 17.4%가 의미하는 것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고흐보다 더 아파보였던 의사
누구나 독대를 꿈꾸는 명화
이홍 칼럼 [전체보기]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파괴적 정쟁 역사의 데자뷔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부울경 시장·도지사의 바닥 지지율
양날의 칼 양정철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플래툰과 현을 위한 아다지오
젊음과 신록의 계절 5월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이탈리아 와인의 다양성
와인 숙성과 설렘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1952년 부산 영도 해안
비오는 날 친구를 기다리다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시민초청강연
  • 번더플로우 조이 오브 댄싱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