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후발 국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나은 것 같지만 왠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후발 국가 방문을 통해선 우리가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부족한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 우리나라의 장단점이 더 잘 보였다.

지난겨울방학 땐 머나먼 땅 아프리카를 돌며 열악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탄자니아, 남아공, 짐바브웨에서는 시민사회의 발달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회주의 국가인 짐바브웨에서 37년간 통치한 무가베는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다 최근 쫓겨났다. 이 나라는 농업에 적합한 옥토와 기후,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지만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실시한 남아공은 27년간 옥살이 후 석방된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이 되면서 이전의 백인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앉히는 등 흑백화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만델라 이후 남아공은 여전히 흑백 간뿐만 아니라 흑인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다. 공항 주변에 흑인 빈민촌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상류층의 부패가 여전하며 생계형 도둑 또한 늘고 있다. 시내 곳곳의 백인 주택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며 빈부 간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백인의 경제력을 흑인이 지배하면서 그들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직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국가 산업을 끌어올리지 못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인구의 80%에 달하는 흑인의 의식이 나아졌지만 시민의식이 높지 않아 부패를 방조한 측면도 있어 보였다.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도입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뇌물 등 권력자들의 부패가 심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해서, 오늘날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의 ‘우분투 정신(Ubuntu)’ 즉 연민 친절 이타심을 강조하는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움 상호관계성과 같은 공동체적 리더십이 재부각되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도 빈곤과의 전쟁, 국가의 단합과 일치 및 조화를 추구한 건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교사 출신인 니에레 전 대통령의 ‘우자마 정신(Ujamaa)’ 즉 자력갱생과 무지로부터의 해방, 친밀한 관계와 형제애 또는 인류애 등이 결합한 단합된 공동체적 리더십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들 나라 모두 최근 생산력 발전과 함께 나라의 부패를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기 위한 국가의 감시자로서 NGO를 강화해야 한다는 민주화 과제를 놓고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정말 우리가 민주주의적인가. 실제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의 파시즘을 걸러내지 못해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물질적 토대는 마련됐지만 시민계층은 오직 경제적, 사회적 상승 욕구에 가득 차 있고, 그 과정에서 사회를 이끌 시민적 행동양식과 습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보호받아야 할 권리의식과 함께 스스로의 책임의식을 동반한 시민성 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불의한 기업이나 국가의 불공정한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자율공간으로서 시민사회가 발전해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마음의 습관’을 시민이 세대를 넘어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민주주의가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개혁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는 데 근간이 되는 시민적 예의를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의 민주적 완성과 함께 이것이 터하고 있는 시민문화가 튼튼하게 구축돼야 한다. 우리 스스로 부패하지 않을 수 있는 시민문화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이루는 시민, 행동하는 실천적 시민, 정의로운 시민이 더 많이 탄생돼야 한다. 그리고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이 충만한 ‘품격 있는 사회’, 빈곤 불평등 차별을 해결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동시에 출현돼야 할 것이다.

부산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