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개봉된 ‘인터스텔라’는 영화로 만든 물리학 교과서라 할 만하다. 중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블랙홀 등등.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해 우주와 미시세계를 규명한 물리학의 핵심 이론들을 영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인류의 잘못으로 황폐해진 지구 대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를 탐사하는 것. 익히 예견된 환경재앙에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우주 탐사까지 곁들여지니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만큼 흥미진진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간 주인공이 초입체공간에서 자신의 집과 연결돼 딸과 소통하는 장면. 주인공은 탐사 결과를 모스부호로 딸에게 보내고, 이를 수신한 딸은 풀리지 않던 우주방정식을 풀어 탈지구의 생존 대안 마련에 성공한다. 영화에서 묘사된 블랙홀은 눈부신 후광이 둘러싸인 검은 원반 형상이다. 블랙홀은 모든 물질을 삼킬 정도로 중력이 강한데, 그로 인해 빛이 둥글게 휘어지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이를 예측했고, 그 이론은 1919년 개기일식 때 입증됐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일반상대성이론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확인됐다. 한국천문연구원 등 전 세계 20여 연구기관이 참여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팀이 지난 10일 공개한 처녀자리 은하의 ‘M87 블랙홀’ 관측 사진을 통해서다. 지구에서 5500만 광년(약 9조4600억㎞) 떨어진 M87 블랙홀은 지름이 160억㎞인 데다,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에 이른다. 사진은 예상대로 두꺼운 빛 무리가 검은 원을 에워싸고 있다. 빛 무리 중 지구 쪽 부분이 더 밝다.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를 연상케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