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던 해, 친정에 들른 나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감자를 얻었다. 엉망진창 살림 실력의 나는 감자를 주방 아무 데나 처박아두고 금세 잊어버렸다.

한 달쯤 지났을까. 남편이 주방에서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그것이 무언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집안에서 식재료가 썩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걸로 잔소리를 들어오던 터라 다음 날 남편이 없을 때를 틈타 주방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냄새의 정체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감자였다. 꽉 묶인 봉지를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속에는 끈적한 ‘물’이 있었다.

감자는 썩으면 물이 된다. 감자는 형태도 거의 없이 거무죽죽한 물로 변했다. 내 주먹만큼 커다란 감자 덩어리들, 삶으면 포슬포슬 전분가루가 날리는 그 하얀 속살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로 변한 감자라니, 내 살림 실력을 상징하는 장치 같아 불길했다.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혼나지 않기 위해 얼른 뒤처리를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음식 재료들을 종종 버렸다. 참 나쁜 짓이었다. 최근에서야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잘 먹는 일이 중요하고, 자연에서 얻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은 줄었다. 그래도 가끔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지난달 말, 냉장고 채소 칸에서 알 감자 하나를 발견했다. 된장찌개와 카레를 해먹으며 꺼내다가 하나 놓쳤나 보다. 감자는 쪼글쪼글하게 몸피를 줄여가며 그 추운 곳에서 홀로 싹을 틔웠다. 잠시 애틋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니 음식 쓰레기 버리는 날에 함께 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것을 칼로 쪼개더니 옥상에 들고 올라갔다.

나는 도시에서만 살아봐서, 남편은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살아봐서 주택으로 이사하자마자 옥상에 식물 키우기를 계획했지만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지인이 맡겨둔 큰 화분이 더해져서 수가 많아졌다. 보리수 매실 자두 다래 수국 방아 국화 장미 둥글레 허브 등이 계절마다 몸을 바꾸며 서 있다.

지난해 가을, 남편은 옥상 한편에 쓰지 않는 물탱크를 잘라서 텃밭으로 만들었다. 옥상에 올라간 남편은 그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감자의 싹을 기다렸다. 2주가 다 되도록 싹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쉽게 말했다.

자두나무 꽃이 팡팡 터지던 며칠 전에 우리는 흙을 뚫고 나온 연한 감자 싹을 발견했다. 남편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볼 품 없이 작은 감자 한 알. 거기에서 싹이 4개나 올라왔다. 못 먹게 되었으니 쓸모없는 감자라고 생각했는데 흙에 들어가자마자 싹으로 다시 살아나다니.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을 발견한 것 같아 새삼 경이로웠다. 꽁꽁 묶인 비닐봉지 속에서 악취를 내는 물로 변한 감자와 흙 속에서 싹을 틔운 감자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나는 그제야 감자를 검색했다.

우리는 곧바로 모종 파는 곳을 찾아갔다. 고추 오이 가지 상추 방울토마토 모종을 샀는데 다른 사람이 ‘한 판’씩 살 때 우리는 낱개로 한두 개씩만 골랐다. 3개에 1000원 하는 모종 앞에서 1, 2개를 셈하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는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보듯 연신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새로 사온 흙을 밭에 채워 넣고 모종을 심었다. 우리는 이제 매일 옥상에 올라가 화분들을 관찰하며 어떤 모종을 더 심을 것인지, 위치를 어떻게 둬야 잘 자랄지 논의한다. 감돌이와 감순이. 남편이 감자 싹에 붙인 이름이다.

세상일의 과정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자 계속 시도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 ‘감돌이와 감순이’를 보며 쉽게 버리고 포기하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날 이후 다섯 번째 4월 16일이 온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자 시도한다. 나는 이 마음이 분명 좋은 의미의 어떤 싹을 틔웠다고 믿는다. 이 싹은 금세 큰 나무가 되어 울창한 숲으로 자랄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