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웰다잉, 품위 있는 마무리 /조광현

임종문화 많이 달라져, ‘존엄사’ 신청자 늘어

무의미한 연명치료 보다 노인 웰다잉 돕기 고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17 19:21:27
  •  |  본지 3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20여 년의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지난해 2월부터 본격시행에 들어갔다. 말기 환자나 임종기 환자에게 임종만 연장시키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의 의료행위를 실시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존엄사를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한다. 차제에 웰다잉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지난날 필자가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 완전히 성공한 수술임에도 환자의 몸이 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경험했다. 호흡부전증으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없거나 혈액투석이나 심폐소생술을 수차례 시행하는 등 온갖 기술과 장비가 동원되어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의식도 없이 상당기간 생명만 연장되는 환자도 있었다. 이럴 땐 사람의 품위를 크게 훼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가 살아 있는 한 무엇이든 끝까지 해야 한다는 게 사회통념이었다. 1997년 보라매병원사건과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이 이를 말해준다. 전자는 환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의료진이 부인의 요구대로 퇴원시켰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후자는 자식들이 의식이 없는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병원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일이다.

지금도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병원 중환자실에 격리되어 치료를 받는다. 그들은 삶에서 소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어 견뎌내고 있다. 조금은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어쩌면 신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소진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는 “의사들은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그들의 고통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멈출 수 없어 보이는 의학적 치료행위의 관성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며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 것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40여 년 전만 해도 장례를 집에서 치르는 것이 관례였다. 객사(客死)를 시킬 수 없다며 병원에 있는 환자도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집으로 모시지 않았던가. 필자의 할아버지, 할머니, 일찍 돌아가신 삼촌도 그랬다. 이 분들은 연명치료 없는 존엄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임종문화가 달라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년 들어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필자가 처음 이곳에 근무를 시작했을 때 의사로서의 정체성에 위협을 받는 듯했다. 의사는 아무리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자세였다면, 이제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처치로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직업본능을 자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츰 노인들의 웰다잉을 도우는 일 또한 의사의 중요한 업무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

최근 우리 병원에서 완곡하게 존엄사를 택한 노인이 있었다. 여든 초반의 심 할머니는 말기 직장암 환자였다. 통변이 어려워 병원을 찾은 것은 불과 달포 전이었는데, 이미 간과 복막에 전이된 암 덩어리가 여럿인데다 복수가 많이 찼다는 말을 듣고 자녀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이 들어 자연스레 찾아온 손님이라며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담당의는 두 가지 치료를 제안했다. 우선 장루(腸瘻)를 만들어 배변을 돕고, 이어 항암제를 투여하자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완강히 거부했다. “복부에 똥주머니를 차고 살면 뭘 하겠느냐”며 차라리 체통이라도 지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온 할머니는 물을 조금만 마셔도 구토를 심하게 하는 터라 경구식이를 포기하고, 수액과 영양제를 투여해야 했다. 전혀 먹지 못하는데도 배는 점점 부어오르고 때때로 숨이 턱에 닿아 힘들어 하는 노인을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 난처한 표정을 짓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라며 오히려 환자가 의료진과 가족들을 격려했다. 그나마 복막천자는 허용했기에 복부에 바늘을 꼽아 1000㏄ 정도의 복수를 제거했더니 한결 편안해 했다.

복수는 자꾸 차올라 수시로 제거해야 했고, 그때마다 정신이 말짱한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복수를 제거하고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 외에 별도의 완화치료나 호스피스케어는 시행하지 않았다. 두 달 조금 지나 드디어 임종이 가까웠을 때, 노인은 필자의 손을 잡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소!”라는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품위 있는 마무리였다. 오랫동안 ‘죽음학’을 연구한 서울대 정현체 교수는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걸 확신한다”고 했다.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최근 전국적으로 ‘존엄사 사전의향서’를 제출하는 사람들이 매달 수천 명 늘어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웰다잉이 차츰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인가?

의사·수필가·온천사랑의요양병원 병원장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호두까기 인형이 만드는 8월의 크리스마스
  2. 2고리원전 인근 드론비행 잇단 적발
  3. 311개국 코미디 고수들 출동…열흘간 쉴 새 없이 웃음폭탄 투척
  4. 4[메디칼럼] 과거 향수에 갇혀 늙어버린 나라 /김부경
  5. 5부전마산복선철 배차간격 확 줄여야
  6. 6진주, 빅데이터·AI기반 교통안전도시 된다
  7. 7하반기 금융권 공채…은행만 2000명 뽑는다
  8. 8우리은행, 추석 앞두고 중소기업에 15조 지원
  9. 9부산대 정외과 동문도 ‘위안부 동원 부정’ 교수 규탄
  10. 10지리산 능선…가을 알리는 야생화 만개
  1. 1부산의료원장 A씨 "조국 딸 혼자가 아닌 ‘다수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
  2. 2청문회 앞둔 조국...웅동학원 관련 의혹이 제기되다
  3. 3조국 딸 의혹에 “내일이라도 청문회 열어달라” 청문회 일정은?
  4. 4점점 커지는 '조국 의혹'…野 '집중포화' 돌파할까
  5. 5조국 가족 운영하는 '웅동학원'…청문회 앞두고 재조명
  6. 6한일 외교장관, 21일 베이징서 회담…갈등해법 모색 주목
  7. 7위장 이혼·위장 매매 의혹 조국의 전 제수, 호소문 전달해...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
  8. 8한국당, 오늘 조국 일가 "위장매매·소송사기 혐의" 고발
  9. 9최인호 "내년 수도권 인구 비수도권 추월…균형 발전 필요"
  10. 10조국 "인사청문회 내일이라도 열어달라…의혹 설명할 것"
  1. 1하반기 금융권 공채…은행만 2000명 뽑는다
  2. 2우리은행, 추석 앞두고 중소기업에 15조 지원
  3. 3오시리아단지 ‘완판’ 임박…잔여부지 투자자 속속 등장
  4. 4돈세탁 의심 금융거래, 지난해 100만 건 육박
  5. 5IMO(국제해사기구) 규제 앞둔 부산항, 대기질관리구역도 지정…선사 비상
  6. 6반도체 흔들리자…상반기 상장사 순익 43% 급감
  7. 7‘홍콩 악재’ 투자자 불안 커지는데 금감원 “지수 연계 ELS(파생결합증권) 손실 희박”
  8. 8웅동 배후단지 입주할 신규업체 내달말 모집
  9. 9갤노트10 홍보 트레일러 전국 누빈다
  10. 10취미용 드론 성능 천차만별
  1. 1조국 딸, 의전원 포기 않고 용이 되려 했나…두 번의 유급과 장학 혜택의 모순
  2. 2조국 딸 사진 명예훼손 처벌 가능…문제의 본질은 어디로
  3. 3초오 달여 먹고 또 사망 사고…“사약 재료로 사용된 독한 약초”
  4. 470대 몰던 승용차 인도 돌진해 30대 임산부 덮쳐
  5. 5‘우 순경 사건’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주민 62명 사망·33명 중경상
  6. 6주택에 침입해 여성 속옷 훔친 40대 구속…모두 3차례 걸쳐 범행
  7. 7금난새, 서울예고 교장 사임 의사 전달…과거 ‘교장이 출근하지 않는다’ 감사
  8. 8수원 아파트 균열 발생… 1991년 지어진 건물, 8~9개 층에 5cm ‘쩍’
  9. 9양산지역 특성화고 설립 추진 잰 걸음
  10. 10'한강시신 사건' 장기화할 뻔…경찰 대응 논란
  1. 1코미어 꺾은 미오치치, 1년 1개월만에 헤비급 타이틀 탈환
  2. 2퀴라소 야구 네덜란드 유럽야구선수권 우승 안기기도
  3. 3 한국, 퀴라소에 4-0 완승… “다음은 일본전!”
  4. 4램파드 첫승 또 실패... 첼시vs레스터 1-1 무승부
  5. 5추신수, 3년 연속 20홈런…미네소타전 동점 홈런 쾅
  6. 6추신수 3년 연속 20홈런…최지만 끝내기 안타
  7. 7 친정팀 만날 다익손, 롯데 구원의 손 될까
  8. 8권순우 US오픈 테니스 예선 3번 시드
  9. 9EPL 최고 왼쪽 풀백 애슐리 콜, 축구화 벗고 지도자로 2막 연다
  10. 10‘30인 생존게임’ 한국선수 중 임성재만 웃었다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대학이 가져온 ‘부’- 독일 하이델베르크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친환경에서 캔 ‘노다지’- 독일 프라이부르크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이기대·청사포가 눈앞서 사라진다면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기고 [전체보기]
부산포해전을 부산대첩으로 격상하자 /서정의
‘문화도시 부산’에 대한 소고 /김배경
기자수첩 [전체보기]
극한직업의 수상구조대 /임동우
옛 해운대역 도시재생 롤모델로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달에는 토끼가, 지구에는 청룡이 산다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전통 가곡인가, 한국 가곡인가
음악과 통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신라젠 쇼크 줄여야 바이오가 산다 /이석주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색깔 혁명
그린란드 매입설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경상도의 여름음식 찜국
품종을 따져라, 밥맛이 달라진다
사설 [전체보기]
조국 후보자 잇단 의혹 청문회서 명명백백 밝혀야
한일 외교장관 내일 회담서 갈등 해법 머리 맞대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건강보험 하나로’와 문재인 케어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예쁘고 행복한 그림의 화가
바람둥이 화가의 영원한 사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일본은 실수했다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조국의 ‘서해맹산(誓海盟山)’
두 정치인의 죽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더위 식혀주는 음악들
7월의 음악예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닭백숙과 와인…더위를 이기는 조합
‘디오픈’ 우승컵은 와인 주전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윤겸의 실경산수 ‘태종대’
김정희를 흠모한 이한복
  • 2019아시아 트레일즈 컨퍼런스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