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Jalalad Din Muhammad Rumi·1207~1273)는 13세기 페르시아 제국 시절을 살았던 작가다.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21세기인 지금까지 후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시와 글을 많이 남겼다.
태생은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인근이지만 대부분의 삶을 터키 콘야(Konya)에서 살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루미는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이슬람 문명에서 서유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자주 비교될 정도로 문학의 여러 장르에서 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시와 글들은 이슬람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동아시아에서 번역이 되어 아직도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수많은 작품 속에서 유난히 많이 언급이 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정원’이다.
그의 작품 속 정원을 묘사한, 빛나는 문장들을 잠시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름다움은 늘 우리 주변에 가득하지만 그걸 알게 되는 순간은 정원을 걷고 있을 때다.”
“비록 불길 속에 있다 해도 친구와 함께라면 그곳은 정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원 한가운데 있다 해도 적과 함께라면 그곳은 불길 속이 될 것이다”.
“오해와 진실의 혼동, 그 너머에 정원이 있다. 그곳에서는 나는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의 뜻을 소리로 세우려 하지 말라. 식물을 키우는 것이 천둥 소리가 아니고 촉촉히 내리는 비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속초 집의 정원엔 작년에 심은 200개가 넘는 튤립 알뿌리가 꽃대를 세워 장관이다.
특히 작년에는 맘먹고 검은 자주 빛을 내는 ‘퀸 오브 나이트(Queen of Night)’라는 품종에 흰색 튤립을 섞어 보았다.
그랬더니 정원의 색과 풍경이 그 전 봄과는 사뭇 달라졌다.
작년 11월 쌀쌀한 바람 속에 알뿌리를 심을 때만 해도 “왜 이렇게 많이도 주문을 했었나”라는 후회가 밀려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봄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니 은근히 ‘내년에는 좀 더 많이 심어볼까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주저할 수 없는 욕심이 슬그머니 밀려든다.
튤립뿐만이 아니다.
4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식물의 성장 속도가 하루하루가 다르다.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한 마디쯤씩 자라 있는 억새와 사초들은 그 세력이 무섭다.
이제 막 싹이 올라오고 있는 감나무와 장미의 새싹은 붉은 기가 묻어 있는 독특한 초록이다.
이 머뭇거리는 듯한 초록의 시간이 지나면 점점 진한 녹색이 되어 갈텐데 이 어정쩡한 초록의 시간이 난 참 좋다.
뒷마당 가마솥 뒤의 돌담 밑에 심은 무늬 조팝의 잎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없어질 테지만 흰눈가루를 뿌린 모양이 선명하다. 딱 이 시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잠시의 풍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옷도 차려 입지 않은 채 겉옷만 하나 걸친 채 정원으로 나간다.
이 짧은 봄의 찬란함을 나만 혼자 본다는 것이 아까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어떻게든 사라지는 시간을 남겨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꽃과 식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보면 어느덧 루미의 시가 머리를 떠나 가슴으로 내려와 앉는 것이 느껴진다.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석류꽃 아래 와인을 준비했어요.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온다면 또 무슨 소용이겠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루미의 시는 정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아름다움, 위로, 희망은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맘 속에 이 봄의 아름다움을 함께하고 싶은 그리운 이,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이번 생의 삶은 누가 뭐래도 훌륭하지 않겠나.
그런 위로도 다시 한번 해본다.
작가·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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