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고를 당했을 때 시간을 과거로 돌려 시뮬레이션해보게 된다. 결과를 예측하는 가상 수행이 아니라 역으로 시간을 돌려보며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가까운 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수차 그랬다. 이랬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사고를 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최근 친분 있는 이의 느닷없는 부고를 들었을 때도 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를 떠올렸다. 살아가는 일에도 가상수행이 가능하다면 예견하지 못하는 미래의 불운한 순간을 피할 수 있을까 하고 별생각을 한다.
많은 대중매체가 한 해녀 수필가의 비보를 일제히 전했다. 그토록 많은 이가 애도할 줄을 본인은 짐작했을까. 어느 문우가 한 말처럼 온몸이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영면한 대변항에서 시간을 돌려보았다. 가닥 잡히지 않는 오리무중 속에서 현 상황이 그가 몰래 돌린 가상현실은 아닐까 하고.
시뮬레이션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을 컴퓨터로 모형화해 가상으로 수행시켜 봄으로써 실제 상황에서의 결과를 예측한다. 컴퓨터뿐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가상훈련도 가능하다. 이 가상훈련의 힘은 크다. 설령 가상으로 한 훈련이지만 실제를 염두에 두고 하는 훈련이라 상당한 효과가 있다. 이 마음속 시뮬레이션의 놀라운 힘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처럼 사라진 그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대비훈련이라도 했더라면 사는 동안에나마 행복한 삶을 누리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수영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올림픽 역사상 전 종목을 통틀어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수영 황제가 있다.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다. 이 선수는 수영코치의 말대로 매일 잠들기 전 자신의 경기 장면을 체크하고 상상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 또한 훈련의 중요한 일부였다. 스타트와 결승점까지 가장 완벽한 경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날마다 한 이 상상경기 덕분에 수경 속에 물이 가득 들어차 앞이 안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헤엄 쳐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땄다. 베이징올림픽에서였다. 머릿속으로 그날그날 해온 상상경기의 효과를 크게 본 것이었다. 손동작 하나, 턴을 해서 되돌아오는 자세까지 세세히 상상하며 경기력 향상과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힘을 키운 결과였다.
이처럼 고도의 훈련은 아니지만, 실제상황 같은 상상과 동작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걸 경험한 적이 있다. 어떤 운동 자세를 처음 배울 때 지독하게 잡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해탈하듯 터득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이 시점에 도달하기가 초보에겐 쉽지 않고 가마득하다. 수영을 배울 때 평영과 접영 동작이 좀체 되지 않았다. 팔다리 길이가 나보다 짧은 젊은 여성도 물살을 가뿐하게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보며 세월 탓만 했다.
평영과 접영의 팔 동작은 완전히 반대다. 평영이 두 팔을 머리 위쪽에서 모아 하트모양으로 물을 끌어당기며 발차기를 하는 것에 반해, 접영은 두 팔을 날개 펴듯 뒤로 활짝 제쳤다가 앞으로 엎어지듯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다. 이 두 자세가 도무지 잡히지 않을 때 틈만 나면 연상 동작을 거듭했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실제로 물속에 있을 때도 머릿속으로 연습한 장면이 떠오르고 다음 동작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여, 펠프스가 상상 연습한 효과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가 갔다. 이 상상 동작은 자세교정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시뮬레이션을 용기가 부치거나 자신이 없는 일에 권하고 싶다. 단상에 오를 일이 있을 때나 많은 사람 앞에 설 때도 이 방법은 효과가 있다. 진정 효과와 함께 실수를 줄이게 한다. 미리 동선을 그려보거나 예행해 봄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가 구순 노모를 두고 간 대변항 방파제에 파도가 세파처럼 철썩인다. 어쨌든 우리는 무성한 이웃이면서 그냥 주변인에 불과했다. 그것이 미안할 뿐이다. 찬란한 사월에 목련처럼 풀썩 져버린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시뮬레이션 없이 사는 일이 바다처럼 위태롭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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