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는 부산에 위치한 독립영화 배급사다. 지역의 좋은 영화를 찾아 배급하고 포스터와 예고편 등 홍보·배급에 필요한 일을 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협동하며 관객이 영화를 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협동조합으로서 나름 영리법인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다. 뭔가 거창한 영화적 철학이라든가 대의 같은 것 말이다. 있다고 해도 막연한 무엇이었다. 이제껏 부산에 독립영화 배급사가 없었다든지 10년짜리 숙원사업이었다든지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참 뒤에 전해 들었다.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몰라서 했다’가 된다.

문화예술 혹은 기획을 하는 이들에게 늦겨울부터 초봄은 매우 지난한 계절이다. 다양한 분야의 기관에서 사업공고가 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해오고 있던 일 혹은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과 가치를 예쁘게 꾸며 서류에 녹여내는, 바야흐로 지원사업의 시간인 것이다. 나 또한 문화 기획이랄까 활동이랄까 아무튼 그러한 영역에 있었던 근 4~5년간은 그 지원사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것은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페이퍼 워크를 한 차례 처리해 내야 하는 이맘때면 늘,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아직 창업 3년 차인 씨네소파도 무수히 많은 지원사업을 거쳤다. 독립영화 개봉지원과 같은 영화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스타트업 등의 각기 다른 장르(?)로 끈질기게 지원하고 줄기차게 떨어졌다. 무형의 가치를 글로 적는다는 것은 제법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때때로 좋은 영향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 기업의 사회적 임무가 무엇인지 본의 아니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막연하던 비전이 자리를 잡게 되거나 이미 행하고 있었지만 막상 깨닫지 못하던 우리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씨네소파는 (부산에서 꾸준히 영화를 배급함으로서) 지역 영화 생태계의 새로운 ‘종’ 혹은 ‘요소’로서 부산의 영화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활동은 내가 아는 가장 거창하고 건설적인 단어들로 꾸며진다. 한 편의 영화를 배급할 때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려는 마음은 ‘지역의 배급 인프라 구축’ 이라는 거대한 단어의 조합으로 바뀌었다. 도입부터 결말까지 이르는 유려하고 빈틈없는 논리를 발견해내고 스스로 뿌듯해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 지역사회를 위해 왜 필요한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다른 곳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얼마나 큰 영향력과 잠재력이 있는지. 당신이 우리를 지원해야 하는 바로 그 이유! 종이 위 우리의 대의는 얼마나 위대한가! 나는 이제 그 거창한 문장에 도취된다.

언젠가 강박적으로 나의 ‘무의미함’을 겁도 없이 선포하던 때가 있었다.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재밌으니까’와 같은 표현이 그 시기의 모든 인터뷰를 채우곤 했더랬다. 지원을 갈망하는 나의 곤궁한 마음은 어느새 자기 자신조차 기만하고 마는 것일까? 지역 기반의 자생적 배급생태계 구축. 이 거대한 단어의 이면에는 아주 작은 초심이 있다. 하고 싶어서 하고, 마땅히 다른 것은 할 게 없어서 하고, 하고 있으니까 하고, 단지 그런 이유로 이루어진 것 말이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지원서류 하나를 갈무리하고 나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공허함에 빠진다.

유례없을 낭랑한 목소리로 지원의 당위를 피력하는 PT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 앉아 다시 나라는 심사위원을 두고 조용히 선언해본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 나름의 계산이야 있었겠지만 뭔가 거창한 영화적 철학이라든가 대의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몰라서 했다’가 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게 주어진 한편의 영화를 바른 마음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배급한다. 그러니 이것은 누구보다, 오늘도 사업의 필요성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고하는 말이다. 속지 말지어니. 너의 그 초라한 진심.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