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3·1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가 18살에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 참가했던 풋풋한 소년. 1년 반 후에는 중국 국적을 얻어 파리로 떠나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다가 통신사를 설립했던 임시정부 프랑스 특파위원.

오스트리아 여성과 결혼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생이별하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던 코스모폴리탄. 해방공간에서 정치 일선과 거리를 두고 강의와 강연에 바빴던 프랑스어 강사. 재혼한 후 남북한에 정부가 수립되자 부부가 함께 프랑스로 가고자 상하이로 갔다가 억류되어, 아내만 귀국 수송선으로 보내고 중국 국적의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던 중국교포. 중국에서 상하이 조선학교 교사였다는 풍문만 전해지는 잊혔던 독립운동가.

그 이름 서영해에 관한 일생이 ‘서영해_파리의 꼬레아, 유럽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부산박물관의 특별기획전으로 지난달 11일 오픈되었다.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100년이라는 10진법적으로 잊혀가는 과거를 기억해내고자 하는 우리에게 때마침 올해는 10진법으로도 흔치 않은 100주년이다.

10대 후반의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이란 대의에 한평생을 바친 부산 출신의 인물에게 부산박물관의 특별기획전은 마땅한 헌사이다.

대의를 기리는 행사는 여러 곳에서 열리니 재삼 그 대의의 가치를 강조하지 않아도 좋겠다. 대의와 더불어 그의 특별기획전에서 20세기 초·중반의 요동쳤던 역사가 빚어낸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의 일상과 비극을 추체험하는 것도 좋다.

서영해의 일생은 다큐멘터리로로 제작되어도 감동을 줄 수 있다. 다만 다큐멘터리와 전시의 차이는 전자는 시청자가 제작자의 의도에 일방적으로 몰입한다면, 후자는 관람객 개인이 상상력을 펼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원치 않던 생이별은 전쟁과 혁명의 시대가 그에게 부과한 비극이었다. 전쟁의 암운 앞에 임신한 오스트리아 아내를 그녀의 조국으로 떠나보내야 했을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신혼의 단꿈이 아직 깨지 않았을 때, 그는 한국인 아내를 홀로 배에 태워 떠나보냈다.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상하이 부두에 서서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는 귀국선에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을 서영해를 그려본다.

전시는 관람객의 기호와 관심에 따라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데, 서영해의 단독사진 몇 점은 흥미롭게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상하이에서 찍은 스무 살 무렵의 사진이다.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으로, 호숫가 굽은 길에 나무 몇 그루와 집이 그려진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한 점은 파리에서 찍은 스물 중·후반 무렵의 사진이라 여겨지는데 의자에 앉아 탁자에 손을 올리고 있다.

이 사진은 개관일 홍보물 표지면에 실렸고 전시실에는 없다. 둘 다 구두를 신고 전자는 중산복, 후자는 양복 차림의 사진관 사진이다. 이들 사진은 이역에서 간난고투를 무릅쓴 독립운동이라는 상식과는 배치된다. 품위를 갖춘 사진 속 현실과 간난고투 현실 간의 괴리.

어느 쪽이 진실일까? 현실이 피폐하기 때문에 사진관의 상업사진은 그 현실 너머의 이상향을 이미지화시켜내고자 하는, 찍히는 측의 욕망이 담긴다.

여기에는 독립 등의 대의가 자리할 여지가 적다. 또한 사진관의 상업사진은 당시 일반인이 공유하고 있던 무의식적 관념을 전한다.

굽은 오솔길로 원근법이 관철된 전자의 배경 그림은 당시 상하이 조계의 문명이 투영되어 있고, 후자의 동양풍 가구는 파리에 사는 마이너리티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각인되어 있다고 읽을 수 있다.

정보를 전하는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의 몫이나 정보를 시각화시켜 감각을 전하는 일은 전시시공업체의 능력이다. 이 전시의 마지막은 철창으로 매듭짓는다. 전시공간을 연출한 이는 “갇힌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철창”을 상징하려고 했다고 한다. 연출 의도만큼 상징이 가슴에 와 닿는지 전시 현장에서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