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PCT를 다녀왔습니다. PCT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의 약자인데, 미국 서부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대표 트레일입니다. 4300여 ㎞나 되는 긴 거리를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만 하는 길입니다.
보통 한꺼번에 이어서 하는 경우가 있고 우리 일행처럼 나눠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눠서 한다고 해도 한 달을 넘기면 장기 트레일이라 할 만합니다. 한꺼번에 할 경우 보통 다섯 달에서 여섯 달 정도 걸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건상 한 달이나 그보다 조금 더 긴 기간 산행을 했고 완주까지 4년을 잡고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나라 백두대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비슷한 점은 장기 트레일라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오로지 산줄기로만 걸어야하고 또한 그 산줄기는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는 반면 PCT는 산도 오르내리고 물도 건너고 끝도 없을 것 같은 평원도 걷고 호수 옆을 지나고 산을 가로지르고 사막을 지나는 다양한 상황이 있는 길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시작할 때는 캐나다 까지 가고 싶다고 하며 말을 확정 짓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가고는 싶지만 과연 갈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60% 정도가 끝까지 간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수를 한참 밑돈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은 가장 힘들다고 하는 일주일 정도에 많이 포기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 무거운 짐과 익숙하지 않은 길 등으로 인해 발에서부터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물집은 기본이며 까지고 발톱이 상하고 발바닥은 불이 나는 듯하고 무릎은 시큰거리고 발목은 아프고 대부분 사람은 걸을 때는 멀쩡한 것 같은데 쉴 때는 절뚝절뚝 엉거주춤이며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서로를 쳐다보며 웃기도 합니다.
일주일쯤 지나 첫 보급지 하이커 박스에 두고 간 장비가 수두룩합니다. 실제 나는 여기서 신발을 주웠는데, 끝까지 잘 썼습니다. 장거리 비행으로 발이 부어 있는 상태에서 구입한 신발이 맞지 않아 고생하던 차에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마 그곳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트레킹 내내 가장 고마웠고 부러웠고 닮고 싶은 대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트레일 엔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천사들을 곳곳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오래 걷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해 땀에 절어 고약한 냄새를 달고 다닐 뿐 아니라 배고프고 갈증에 시달리는 하이커들에게 물과 음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우리가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
첫 번째 엔젤은 트레킹 출발 전날 만났습니다. 출발지인 멕시코 국경 캄포는 황량한 사막에다 철조망만 끝없이 쳐져 있는 곳이라 지인의 도움이 아니면 가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가까운 도시에 살면서 하이커들의 편의를 위해 숙식을 제공하고 다음 날 새벽 출발지점까지 차량으로 태워다 줍니다. 20년째 그 일을 했고 이제는 늙어서 내년까지만 하겠다고 하는데 한창 시즌에는 하이커가 40명 이상 몰린다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뙤약볕에 무거운 짐에 헉헉대며 가다보면 길가에 또띠아 물 맥주 과일 음료가 있음을 쪽지에 써두고 힘든 하이커를 기다리는 엔젤이 있는가 하면 사막이라 100여 ㎞ 정도 식수가 없는 구간에 물을 가져다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찻길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나무 그늘에 맥주 한 박스가 놓여 있기도 합니다.
어느 주말 찻길에서 만난 ‘대박’ 엔젤은 자동차 트렁크에 빵 과자 과일 야채 물 음료 맥주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마음껏 먹고 배낭에 넣어 가라고까지 합니다.
보급품을 찿기 위해 트레일을 벗어나 마을로 내려가려면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데, 아예 차로 동네와 트레일을 왕복하며 하이커를 실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PCT를 완주한 이인데,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참 고맙고 부럽고 닮고 싶은 문화입니다. 보시, 봉사, 보답….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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