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주의 회복과 함께 지역분권과 균형 발전에 힘을 쏟았다. 일부는 성공해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정책은 중앙 세력에 의해 중단되고 사라졌다.

중앙 세력이 지방분권을 교묘하게 뭉갠 사례는 많다. 지방세를 늘려준다며 균특예산을 빼 갔다. 돌 하나 얹어 놓고 아랫돌을 가져간 셈이다. 복지를 강화한다며 지방정부가 부담해야 할 예산을 늘려 놓고 정작 지역에 내려준 예산은 쥐꼬리만큼 늘렸다. 지방정부의 재정 파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전 부산 북구청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필 편지로 호소해 화제가 됐던 것도 복지예산 부족으로 인한 재정 파탄 문제였다.

지역분권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중앙세력은 달라진 게 없다. 서울 집값을 잡는다며 수도권에 또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신도시 주민들은 자기네 집값 떨어진다며 야단법석이다. 신도시끼리 다투는 꼴이다. 서울 집값이 잡힐지도 의문이지만, 결국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자꾸 유입되는 구조를 확산하고 있다. 지역의 집값이 떨어지고 거래절벽이라고 아우성쳐도 본체만체한다. 이러고서야 무슨 지역분권인가. 지역에서 사람이 자꾸 떠나는데.

현 정부의 지역분권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혁신도시2’이다. 아무래도 총선용 냄새가 나지만 일단 지켜보자. 잘만 추진된다면 지역분권에 큰 힘이 될 터. 문제는 중앙 세력과 짬짜미 된 중앙언론이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만약 본격화되면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다’며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저지할 것이다. 당·정·청이 그들의 악다구니를 견뎌낼지 자못 궁금하다.

예산·분권 등 지역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중앙언론들은 그들의 이익에 어긋나면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극렬하게 반대한다. 지역언론이 아무리 목소리를 키워봐야 중앙에 전달되지 않는다. 뉴스 유통채널이 막혔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던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네이버 본사 앞에는 네이버 규탄 집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언론학계 시민단체는 “네이버에는 지역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날 집회의 캐치프레이즈에 모든 게 함축됐다. “뭐라카노 네이버야! 지역에도 사람 산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지역언론을 차별하는 네이버의 사과를 요구했다. 모바일 뉴스를 포함한 모든 뉴스 배열 정책을 시정하라고 외쳤다.

그동안 이 칼럼난을 통해 입이 닳도록 언급했다. 네이버의 모바일 뉴스판에는 지역언론이 생산한 뉴스는 노출되지 않는다. 구독자는 10개 종합지, 11개 인터넷·IT지, 9개 경제지, 14개 방송·통신사 등 44개 매체만 선택하게 되어 있다. 네이버가 검색 알고리즘까지 바꿔 지역언론 기사는 거의 마지막에 가야 볼 수 있다. 그동안 국제신문을 비롯한 지역언론들이 잇달아 개최한 토론회에서 누차 지적한 사항이지만 네이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네이버는 최근 ‘어뷰징을 해소하고 뉴스 검색 품질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을 바꿨고, 지역지를 배제한 사실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아마도 담당자가 지역 뉴스를 한 번도 검색해보지 않은 것 같다. 만약 검색 결과를 봤다면 알고리즘이 잘못됐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을 거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런 대목이 있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언론이라는 단어를 포털로 대체해보자.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포털은 이미 막강한 권력이 되어버렸다.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에 불러도 꿈쩍 않는 그들이다.

네이버가 지역언론의 거센 항의에도 버티는 배경에는 국가 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가 있다. 연합뉴스가 지역 뉴스를 공급하기 때문에 네이버는 아쉬운 게 없다는 투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연합뉴스가 네이버로부터 거액의 전재료를 받고 뉴스를 공급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의 돈을 받아 생산한 콘텐츠로 장사하는 셈이다. 상도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연합뉴스가 한 해 지원받는 정부 보조금은 무려 300억 원이다. 올해 전국 지역신문에 지원하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이 고작 80억 원이다.

이런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려면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도 포털의 뉴스 유통 독점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에는 당연히 지역언론 부문도 있다.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언론 활성화, 신문진흥과 지역신문 지원이 그것이다. 이들 공약 중 진행 중인 것은 없다. 말로만 지역분권을 외칠 게 아니다. 지역언론이 무너지면 분권도 민주주의도 다 무너진다.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